
발바닥 티눈 치료를 이유로 18건의 보험에 가입해 5개 보험사에서 30억 원이 넘는 수술보험금을 청구한 가입자 A씨의 보험 계약이 무효라는 판결이 나왔다. 법원은 A씨가 보험금을 부정 취득할 목적으로 보험에 가입했다고 판단하며, 민법 제103조(반사회질서 법률행위)에 따라 계약이 무효라고 결론 내렸다.
15일 양승현 보험연구원 연구위원이 발표한 '보험법 리뷰-티눈 수술보험금 부정 취득 관련 판례 검토'에 따르면, A씨는 2013년부터 2017년까지 5개 보험사에 정액보장형 보험 18건을 가입했다. 이후 그는 티눈 치료를 이유로 총 3933회의 냉동응고술을 받은 뒤 매회 30만~40만 원의 보험금을 청구해 총 30억 원 이상의 보험금을 수령했다. 냉동응고술은 병변 부위를 냉동 손상시켜 조직 괴사를 유도하고, 이를 통해 새로운 조직이 재생되도록 하는 치료법이다. A씨는 서울과 지방의 20여 개 병원을 옮겨 다니며 요일별로 다른 병원에서 시술받은 것으로 드러났다.
초기 4건의 소송에서는 법원이 A씨의 손을 들어줬다. 당시 법원은 티눈의 재발 가능성과 일부 계약의 정당성을 인정하며, 다수의 보험계약 가입과 높은 보험료가 단순히 의심만으로는 보험금 부정 취득 목적을 증명하기 부족하다고 판단했다. 하지만 2023년 5월 이후 판결은 달라졌다. 법원은 A씨의 수입 대비 과도한 보험료와 단기간 다수의 보험 가입 이유를 납득하기 어렵다고 보았다. 또 병명과 치료 내역에 비해 시술 횟수와 기간이 지나치게 많고, 청구된 보험금 역시 과도하다는 점을 근거로 A씨가 보험금을 부정 취득하려 했다는 의도를 인정했다.
A씨는 요일별로 다른 병원을 방문하며 치료받는 등 과잉 치료 의심 정황이 포착됐고, 치료 비용에 비해 높은 보험금으로 과잉 치료의 유인이 된 점도 문제로 지적됐다. 특히 A씨의 아버지도 동일한 방식으로 다수의 보험금을 청구한 사례가 드러나며 보험사의 주장에 신빙성을 더했다.
보험업계는 이번 판결을 통해 보험금 부정 취득의 심각성이 명확히 드러났다며 관련 단속을 강화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양승현 연구위원은 "이번 사례는 보험계약이 부정한 목적을 가지고 체결되었을 경우 법적으로 무효가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고 강조하며, "정당하지 않은 보험금 청구는 전체 보험 체계의 신뢰를 저하시킬 뿐만 아니라 사회적 비용을 증가시키는 행위"라고 지적했다.
보험금 부정 취득 사례는 개인적인 이익 추구를 넘어, 보험사와 가입자 모두에게 큰 피해를 끼치는 문제로 지적된다. 서울대와 보험연구원의 연구용역 결과에 따르면 보험사기로 인한 보험사의 손실액은 연간 6조2000억원에 달하며, 이럴 경우 가구당 약 30만원의 보험금을 추가로 부담하게 되는 셈이다. 부정 청구가 늘어나면 보험사의 재정 부담이 커지고, 결국 선의의 보험 가입자들이 추가 비용을 부담해야 한다는 점에서 심각한 사회적 문제로 대두되게 된다.
보험 사기 문제는 보험사와 가입자 간 신뢰를 무너뜨리는 주요 요인으로 작용하는 한편, 보험업계는 신뢰 회복을 위해 새로운 시스템 도입과 기술 활용을 고려하고 있다. 최근 일부 보험사는 AI 기반의 이상 거래 탐지 시스템(FDS)을 도입해 보험금 청구 과정에서 비정상적인 패턴을 자동으로 탐지하고 있다. 이러한 기술은 보험 사기를 예방하는 데 효과적일 것으로 기대된다. 정부와 금융당국은 보험 사기 근절을 위해 더욱 강화된 법적·제도적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다. 특히 보험금 청구의 투명성을 강화하기 위해 의료 기록과 보험 청구 내역 간 연계를 더욱 철저히 하는 방안이 필요하다. 또한, 허위 청구와 과잉 치료를 근절하기 위해 의료기관과 협력해 검증 프로세스를 체계화할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다.
일각에서는 해외 사례를 통해 도입할 점을 고려하는 것도 필요하다는 목소리다. 현재 미국, 영국 등 선진국에서는 보험사기를 막기 위해 보험사기 전담 조사팀(SIU: Special Investigation Unit)을 운영하며, 의심 사례에 대한 조사와 법적 대응을 적극적으로 진행하고 있다. 또, 보험 가입자의 신뢰를 높이기 위해 AI 기술과 데이터 분석을 활용한 정교한 심사 시스템을 구축하고 있다. 이와 비교해 국내의 대응은 아직 초기 단계로 평가되며, 해외 선진 사례를 바탕으로 제도적 보완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