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 지른 아들은 도망, 엄마는 “아들이 불 속에”… 소방관 6명 참사

  • 등록 2025.02.28 16:3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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母 요구로 위험한 구조 활동
불 속에 있다던 아들이 방화범
방화범 심신미약으로 징역 5년
6명의 희생이 처우 개선 이끌어

 

팬데믹 이후 침체를 벗어나지 못하던 영화업계에 지난 연말 영화 한 편이 깜짝 흥행을 일으키며 모처럼 극장가에 활력을 불어넣었다. 개봉 8일 차에 누적 관객수 100만 명을 돌파한 이 영화의 제목은 <소방관>, 곽경택 감독이 연출했고 배우 주원, 곽도원, 유재명 등이 출연했다.


흥행 이유 중 하나로 20여 년 전 발생한 실화를 바탕으로 영화가 제작됐다는 사실이 언급되는 가운데, 영화 제작사는 유료관객 1명 당 119원의 성금을 대한민국 소방관 장비 및 처우 개선을 위한 현금기부를 하겠다고 밝혔다.


2001년 3월 4일 새벽, 서울서부소방서(현 은평소방서) 대원들은 녹번동 화재 오인 신고로 출동했다가 철수하는 중이었다. 오전 3시 47분, 서울 서부소방서에 한통의 신고가 접수됐다. 서대문구 홍제동 다가구 주택에서 화재가 발생했다는 내용이었다. 공교롭게도 대원들이 복귀 중에 들어온 신고였기 때문에 출동시간이 평소보다 단축되었고 평소보다 빠르게 현장에 도착할 수 있었다.

 


소방대원 앞을 가로막은 건 불법 주차 차량들이었다. 골목을 가로막은 차량 때문에 소방차가 진입할 수 없었고 대원들은 결국 20kg가 넘는 장비를 직접 들고 화재현장으로 뛰어 들어갔다. 대원들은 진화 시작 5분여 만에 주택의 집주인과 세입자 가족 등 7명을 대피시켰다. 그리고 구조 인원을 파악하고 있는데 집주인이었던 A 씨가 울부짖기 시작했다. 아들이 아직 집 안에 있다는 것이었다. 6명의 대원들이 망설임 없이 불길 속으로 뛰어들었다.


불길에 휩싸인 집안에 어렵게 진입한 대원들은 거실, 아들 방, 안방, 주방, 화장실까지 샅샅이 수색했다. 하지만 A 씨가 말한 아들은 보이지 않았다. 그 사이 불길은 더욱 커져 건물 전체를 집어삼키고 있었다. 위험함을 감지한 대원들이 밖으로 나오자 A 씨는 안에 사람이 있는데 소방관이 그냥 나왔다며 원망을 했고, 대원들은 다시 내부로 진입했다. 소방대원들은 지하 보일러실로 수색을 이어갔다. 그곳에도 아무도 없었다. 그리고 지하 계단을 벗어나는 순간, 큰 굉음과 함께 건물이 무너졌다.


내부에 진입했던 소방관은 총 6명. 아무도 빠져나오지 못하고 그대로 매몰됐다. 밖에 남아 있던 대원들은 망치로 콘크리트를 깨며 구조작업을 시작했다. 오전 5시, 구조작업을 벌인지 50분 만에 현관 쪽에서 방수 작업을 하던 김철홍 대원이 처음으로 구조됐다. 오전 7시, 지하로 내려갈 수 있는 통로가 뚫렸고 7시 34분, 이승기 소방관, 김기석 소방관이 차례로 구조되었다.

 

이후 박준우, 박동규, 장석찬, 박상옥 소방관이 잇따라 구조되었지만 모두 사망하였다. 현장에서 동료들의 비보를 전해 들은 소방대원들은 망연자실한 채 오열했다. 집 안에 있다던 A 씨의 아들은 근처 친척 집에 있었다. 그리고 더욱 충격적인 것은 화재의 원인이 ‘방화’였고, 방화범이 바로 A 씨의 아들 B 씨라는 사실이었다. 어머니와 심하게 다툰 B 씨는 어머니인 A 씨에게 주먹을 휘둘렀고, 그래도 분이 풀리지 않자 홧김에 이불에 불을 붙였다. 그리고 정작 본인은 겁이 나 친척 집으로 도망쳤던 것이다.


방화와 존속상해 혐의로 구속된 B 씨가 정신질환 등의 심신미약을 인정받아 징역 5년을 선고받자 낮은 형량에 대한 국민적 분노가 커졌다. 이 사건을 계기로 소방관들의 처우 개선에 대한 요구가 거세졌다. 당시 소방관들은 24시간 교대 근무 체제에서 하루 평균 7회 이상의 출동을 해야 했고, 경찰이나 군인과 달리 전문병원이 없어 부상 시엔 자비로 먼저 치료해야 하는 실정이었다. 여기에 방화복도 지급되지 않고 있었음이 알려지며 사회적 충격을 불러일으켰다.


“이제 그곳에서는 소방관 하지 말라”
서울 시청에서 엄수된 합동 영결식에서 한 소방대원이 뜨거운 눈물을 흘리며 남긴 말이다.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시민을 구하기 위해 목숨을 바친 여섯 명의 희생은 소방관 처우 개선을 위한 변화를 이끌었다. 홍제동 화재사건 이후 방화복이 전면 보급되었으며, 현장 인력 부족 해결을 위한 의무소방대가 창설되었다. 소방공무원을 위한 국립소방병원은 충북 음성에 건립되어 2026년 상반기 개원을 앞두고 있다.

 

더시사법률 이소망기자 |

이소망기자 CCJHI@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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