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 사법기관이 작성한 피해자 신문조서도 일정한 절차를 거쳤다면 유죄의 증거로 사용할 수 있다는 대법원 판단이 나왔다.
해외 체류 증인이 늘어나는 상황에서 반대신문권 보장과 전문법칙의 한계를 어떻게 조화시킬 것인지에 대한 기준을 제시한 판결로 평가된다.
26일 법조계에 따르면 대법원 1부(주심 노태악 대법관)는 특수상해 혐의로 기소된 A씨에게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A씨는 2018년 8월 29일 밤 경기 의왕시의 회사 숙소에서 동료 B씨와 술을 마신 뒤 범행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수사결과 A씨는 2018년 8월 29일 밤 경기 의왕시 한 회사 숙소에서 동료 B씨와 술을 마신 뒤 방으로 들어가 잠을 자려던 B씨를 따라가 흉기를 휘둘러 전치 2주의 상해를 입힌 것으로 조사됐다.
사건의 쟁점은 피해자 진술의 증거능력이었다. 형사소송법은 원칙적으로 공판정에서 직접 진술하지 않은 서류나 진술, 이른바 전문증거를 증거로 사용할 수 없도록 하고 있다.
다만 일정한 요건을 갖춘 경우에는 예외적으로 증거능력을 인정한다. 헌법재판소 역시 전문법칙이 피고인의 반대신문권을 보장하기 위한 장치임을 확인한 바 있다(헌재 2004헌바45).
B씨는 국내 검찰 조사에서 피해자 신분으로 진술을 마친 뒤 중국으로 출국했다. 1심은 검찰에서 작성된 진술조서와 상해진단서 등을 종합해 공소사실을 인정하고 A씨에게 징역형의 집행유예가 선고됐다.
항소심 역시 범행 자체는 인정했다. 다만 피해자가 법정에 출석하지 않은 상태에서 기존 조서를 그대로 증거로 삼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고 봤다. 형사소송법 제314조가 정한 ‘외국거주 등으로 공판정 출석이 불가능한 경우’에 해당하는지와 그 진술이 ‘특히 신빙할 수 있는 상태’에서 이뤄졌는지가 문제였다.
대법원은 형사소송법 제314조의 ‘외국거주’ 요건에 대해 단순히 해외에 체류하고 있다는 사정만으로는 부족하다고 판시해 왔다.
수사기관이 연락처 확보, 출국 가능성 대비, 출석 확보 방안 마련 등 가능한 상당한 조치를 다했음에도 공판 출석이 불가능해야 한다는 것이다(대법원 2015도17115). 특히 상대국과 형사사법공조조약이 체결돼 있다면, 사법공조에 의한 소환이나 현지 법원에서의 증인신문 요청 등을 먼저 시도해야 한다는 취지다.
실제 2021년 서울동부지방법원은 해외로 출국한 피해자의 기존 진술을 두고, 사법공조를 시도하지 않은 채 제314조 적용을 주장한 경우 증거능력을 부정했다.
항소심은 법리에 따라 국제 형사사법 공조를 요청했다. 재판부는 검찰이 피해자의 출국 가능성을 알고도 연락 수단을 충분히 확보하지 않았고 1심 단계에서 국제 공조를 통한 증인신문을 시도하지 않은 점을 지적했다.
재판부는 "당심이 요청한 형사사법공조 절차에 의해 중국 사법당국(길림성 고급인민법원) 주재 하에 이루어진 피해자에 대한 신문 과정에서 피해자는 공소사실과 부합하는 진술을 했다"며 "상해진단서 내용과 다른 증거들도 피해자의 진술에 부합한다"면서 A씨에게 1심과 같은 형량을 선고했다.
상고심의 판단도 같았다. 대법원은 "원심은 국제형사사법 공조법과 '대한민국과 중국 간의 형사사법 공조조약'에 따라 중국 사법부의 길림성 고급인민법원에서 실시한 피해자에 대한 신문기록을 증거로 해 이 사건 공소사실을 유죄로 판단했다"며 "원심 판단에 법리를 오해한 잘못이 없다"며 판결을 확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