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족 간의 재산범죄의 처벌을 면제하는 ‘친족상도례’ 조항에 대해 헌법재판소가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렸더라도 그 효력이 과거 사건에까지 미치지는 않는다는 대법원 판단이 나왔다. 처벌을 면하게 하는 규정에 소급효를 인정할 경우 오히려 형사상 불이익이 발생할 수 있다는 점을 근거로 들었다.
31일 법조계에 따르면 대법원 1부(주심 노태악 대법관)는 업무상 횡령과 사기, 컴퓨터 등 사용사기 혐의로 기소된 A씨 사건에서 원심 중 형 면제 부분을 파기하고 사건을 창원지방법원으로 돌려보냈다.
2심은 A씨에게 징역 1년 5개월을 선고하면서도 컴퓨터 등 사용사기 혐의에 대해서는 형을 면제했으나, 대법원은 이 부분 판단에 법리 오해가 있다고 봤다.
A 씨는 2023년 4월부터 그해 6월까지 자신이 자금 관리 업무를 맡고 있던 회사 금고의현금 1억2450여만원을 15차례에 걸쳐 자신의 계좌로 무통장 입금한 다음 도박자금 등으로 사용한 업무상 횡령으로 기소됐다. 인터넷 사이트에 물건을 판매한다는 글을 올린 후 이를 보고 연락한 피해자에게 13만원을가로챈 사기 혐의도 받았다.
또 A 씨는 2021년 말부터 2022년 2월까지 함께 거주하던 처제 B 씨의 동의 없이 휴대전화를 이용해 카드번호를 입력하고 결제 대행업체를 통해 약 7700만원 상당을 결재하거나 현금서비스 신청을 한 혐의(컴퓨터 등 사용사기)로도 재판에 넘겨졌다.
1심은 A 씨의 혐의를 모두 유죄로 인정하고 징역 1년 8개월을 선고했다. 피해 회사에 이미 변제한 1200만원을 제외한 횡령금 1억1250여만원을 지급할 것도 명했다.
반면 항소심은 업무상 횡령과 사기 부분만 유죄로 보고 형량을 징역 1년 5개월로 낮췄다. 특히 컴퓨터 등 사용사기 부분에 대해서는 피해자를 동거 친족인 B씨로 보고 형법 제328조 제1항(친족상도례)을 적용해 형을 면제했다.
형법 제328조 제1항에 따르면 “직계혈족, 배우자, 동거친족, 동거가족 또는 그 배우자 간에 발생한 제323조의 죄에 대해서는 형을 면제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일정 범위의 친족 사이에서 발생한 재산범죄의 경우 국가형벌권 행사를 제한하겠다는 취지다.
2심 재판부는 “검사가 공소장에 피해자가 누구인지 직접 명시하지는 않았더라도 ‘함께 거주하던 처제 B 씨’라는 표시과 범죄일람표 기재 등을 종합하면 B씨를 피해자로 특정해 기소한 것으로 해석하는 것이 타당하다”며 “동거 친족인 B 씨가 피해자라면 친족상 도례 규정을 적용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2심 재판이 진행 중인 지난해 6월 헌재가 친족상도례를 규정한 형법 328조 1항에 대해 재판관 전원일치 의견으로 헌법불합치 결정을 하면서 해당 조항의 적용 여부도 쟁점이 됐다.
문제는 항소심 진행 중이던 지난해 6월 헌법재판소가 형법 제328조 제1항에 대해 재판관 전원일치 의견으로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리면서 불거졌다. 위헌 결정이 내려진 형벌 조항은 원칙적으로 결정 시점부터 효력을 상실하지만, 형벌을 규정한 조항에 대한 위헌 결정은 예외적으로 소급효가 인정될 수 있다는 점이 쟁점이 됐다.
2심 재판부는 위헌결정으로 소급되는 형법은 ‘처벌하는 조항’으로 한정되므로 A 씨의 컴퓨터 등 사용사기 혐의에는 여전히 친족상 도례가 적용된다고 판단했다.
대법원도 친족상 도례 조항에 대해 원심과 같이 판단했다.
대법원은 “해당 규정은 범죄를 처벌하는 조항이 아니라 일정한 경우 형을 면제하는 사유를 정한 조항이라는 점에서, 이를 소급 적용할 경우 과거에 형사처벌을 받지 않았던 사람들에게 불이익이 발생할 수 있다”며 “이 같은 경우에 소급효를 인정하는 것은 법적 안정성과 이미 처벌되지 않는 대상이었던 피고인의 신뢰 보호의 이익을 크게 해치게 되어 그 규정 취지에 반한다”고 덧붙였다.
이어 “따라서 형법 328조 1항은 헌법불합치 결정이 있는 날부터 효력을 상실한다고 봐야 한다”고 밝혔다.
다만 대법원은 원심이 피해자 특정 문제를 충분히 심리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대법원은 "범죄일람표와 검사가 증거로 제출한 수사 보고 등을 종합하면 검사가 피해자를 B 씨가 아니라 가맹점이나 대출금융기관으로 해 기소한 것으로 볼 여지가 충분하다"며 2심 재판부가 석명권을 제대로 행사하지 않은 잘못이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원심은 검사에게 석명권을 행사해 피해자가 누구인지를 명확히 한 후 친족상 도례 적용 여부에 관한 판단에 나아갔어야 한다”며 “그럼에도 검사가 B 씨를 피해자로 해 기소한 것으로 단정하고 친족상 도례를 적용한 것은 잘못”이라며 사건을 파기환송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