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행 당시 법이 아닌, 더 불리한 구법이 적용돼 처벌됐다면 그 판결은 유지될 수 있을까.
2일 법조계에 따르면 16년 전 슈퍼마켓 점주를 살해하고 도주했던 40대 남성이 항소심에서 무기징역을 선고받았다. 1심이 선고한 징역 30년형은 처단형 범위를 벗어난 위법이 있다는 이유로 파기됐다.
수원고등법원 형사1부(재판장 신현일)는 “강도살인죄의 법정형은 사형 또는 무기징역”이라며 “범행 당시 적용되던 구 형법에 따르면 무기징역을 선택한 뒤 감경할 경우 처단형 범위는 징역 7년 이상 15년 이하에 그친다”고 밝혔다.
이어 “그럼에도 1심이 징역 30년을 선고한 것은 법이 허용한 형량 범위를 벗어난 것”이라며 “더 이상 유지될 수 없다”고 판단했다.
형사재판에서 처벌 기준은 원칙적으로 ‘행위 시의 법률’이다.
형법 제1조 제1항은 “범죄의 성립과 처벌은 행위 시의 법률에 따른다”고 규정한다. 다만 같은 조 제2항은 예외를 두고 있다. 범행 이후 법이 개정돼 해당 행위가 더 이상 범죄가 아니게 되거나 형이 더 가벼워진 경우에는 신법을 적용해야 한다는 취지다.
대법원도 “범죄 후 형벌법규가 변경돼 형이 가벼워진 경우 특별한 경과규정이 없는 한 신법을 적용해야 한다”고 판시하고 있다(대법원 2021도9388 등).
이처럼 신법이 더 유리한 경우에도 구법을 적용해 형을 선고하면 법령 적용을 잘못한 것으로 상소심에서 문제가 될 수 있다.
이번 사건은 신·구법 적용 문제가 아니라, 구법을 적용하면서도 그 법이 정한 처단형 범위를 벗어난 점이 쟁점이었다. 즉 법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적용 방식의 위법성이 문제로 지적됐다.
항소심 재판부는 양형 사유와 관련해 범행의 계획성과 잔혹성을 강조했다.
A씨는 범행 이틀 전 미리 슈퍼마켓을 방문해 내부를 확인한 뒤 범행 당일 모자와 마스크, 장갑을 착용하고 흉기를 소지한 채 침입했다. 금고를 절취하려던 과정에서 잠에서 깬 점주가 저항하자 목과 복부 등 치명 부위를 수차례 찔러 살해한 뒤 현금 3만~4만원을 빼앗아 달아났다.
재판부는 “경제적 이익을 위해 사람의 생명을 빼앗은 강도살인은 어떠한 이유로도 정당화될 수 없는 중대한 범죄”라며 “피고인은 무방비 상태의 피해자를 상대로 치명 부위를 집중적으로 공격해 잔혹하게 살해했다”고 지적했다.
또 범행 직후 약 16년간 도피생활을 이어간 점, 그 사이 추가 범죄로 처벌받은 전력이 있는 점도 불리한 정상으로 고려됐다. 재판부는 “피고인을 장기간 사회로부터 격리하는 것이 범행의 중대성과 책임 정도에 부합한다”며 무기징역을 선고했다.
다만 과거 전력이 절도와 사기 범죄에 그치고 살인 전력은 없는 점, 재범위험성 평가(KORSA-G)와 사이코패스 평정척도(PCL-R) 결과가 ‘중간’ 수준으로 나타난 점 등을 고려해 사형까지 선고할 정도는 아니라고 판단했다.
A씨는 2008년 12월 경기 시흥시 정왕동의 한 슈퍼마켓에 침입해 점주를 살해하고 금품을 빼앗아 달아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당시 범행 장면은 CCTV에 촬영됐지만 장기간 미제로 남았다.
경찰은 지난해 2월 결정적 제보를 확보해 수사를 재개했고 같은 해 7월 경남 함안에서 A씨를 검거했다.
법무법인 청 곽준호 변호사는 “강도살인죄는 사형 또는 무기징역만 규정된 범죄로 감경하더라도 유기징역은 7년 이상 15년 이하로 제한된다”며 “1심의 징역 30년형은 법이 허용한 범위를 넘은 것으로 항소심이 이를 바로잡은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이번 판결은 형량의 경중 문제가 아니라 법이 정한 형벌 체계를 정확히 적용해야 한다는 원칙을 재확인한 사례”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