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당방위는 어렵다

  • 등록 2025.04.02 17:1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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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당방위 실제 인정 어려워
자리를 피하는 것도 방법

 

정당방위. 우리에게 너무나 익숙한 단어다. 일상생활에서도 흔히 접하는 표현 중 하나로, 억울한 상황이 벌어졌을 때 “그거 정당방위 아니야?”라며 쉽게 말하곤 한다. 이처럼 정당방위라는 단어는 국민 정서에 널리 퍼져있고, 언론에서도 종종 다뤄질 만큼 친숙하게 느껴진다. 하지만 막상 이 단어를 법률 용어로 쓰려고 할 때는 고민이 생긴다.


정당방위는 부당한 법익 침해를 방위하기 위한 행위에 상당한 이유가 있는 때는 처벌하지 않는 제도다. 문제는 현실에서 이 정당방위를 인정받는 것이 하늘의 별 따기라는 점이다. 제도의 정의에서 알 수 있듯, ‘상당한 이유’가 있어야 하는데 수사기관과 법원은 이 ‘상당한 이유’ 인정에 매우 인색하다. 흔히 발생하는 폭행 사건에서는 더욱 그렇다.


평범한 직장인 A씨는 그날도 어김없이 퇴근 후 헬스장을 찾았다. 평소와 같은 날이었지만 그날 A씨에게는 생각지도 못한 날벼락이 기다리고 있었다. 헬스 기구를 이용하려던 중 마주친 B씨와 '누가 먼저 기구를 이용할 것인지'에 대한 다툼이 발생한 것이다.

 

이 과정에서 기분이 상한 B씨는 갑자기 A씨의 부모를 언급하며 시비를 걸었다. A씨는 키도 크지 않고 체격이 마른 편이었고, B씨는 덩치가 크고 외모에서 위압감이 느껴지는 인물이었다. B씨는 ‘맞장 뜨자’는 표현까지 써가며 A씨를 도발하였고, 실내 소란이 부담됐던 A씨는 B씨에게 밖으로 나가 얘기를 하자고 했다.

 

B씨는 순순히 따라 나가는 척하면서 A씨를 CCTV가 없는 구석으로 데려갔고 막다른 골목에 다다른 순간 거침없이 주먹을 날렸다. A씨는 저항할 틈도 없이 얼굴을 가격당해 고꾸라졌다. 이어지는 무자비한 폭행 속에서 어떻게든 정신을 차리려고 다리를 허우적거렸고 그 과정에서 B씨의 다리 부분을 걷어찼다. 이후 간신히 폭행 현장을 빠져나온 A씨는 헬스장 프런트에서 112 신고를 했고 경찰이 현장에 출동했다.


온 얼굴이 피범벅이 된 A씨는 경찰이 도착하면 모든 것이 해결될 것으로 생각했다. 자신을 가격한 B씨가 폭행 현행범으로 체포되는 모습을 기대한 것이다. 하지만 현실은 A씨의 기대와는 너무도 달랐다. B씨가 본인도 맞았다며 A씨를 처벌해달라 요구해 쌍방 폭행으로 두 사람 모두 입건된 것이다.

 

이때부터 시작된 A씨의 법정 공방은 길고도 냉혹했다. A씨는 늑골 골절, 치아 파손 등 수주의 치료가 필요한 상해를 입었다. B씨는 다리 부분에 입은 찰과상이 전부였다. A씨는 정당방위를 주장했다. 하지만 검사는 A씨에게 상해 혐의를 인정하면서 정상을 참작하여 기소유예 처분을 했다. 기소유예 처분은 사실상 다툴 방법이 없다.

 

헌법소원이라는 절차가 있긴 하지만 일반인이 접근하기 어렵고 받아들여질 가능성도 극히 낮다. 또 1년이 넘게 걸린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A씨는 정신적 신체적 손해에 대한 배상금 몇백만 원 수준의 판결을 받았다. 치료비와 그간의 고통을 감안하면 턱없이 부족한 금액이었다.


길고도 지루했던 폭행 사건의 결론은 ‘상처뿐인 영광’이라는 말 외에는 달리 표현할 길이 없었다. A씨는 형사처벌은 면했지만 정당방위를 주장했던 그의 방어 행위는 인정되지 않았다. 소송을 통해 힘겹게 얻어낸 손해배상금조차도, 실질적인 손해와 고통에 비하면 너무나 적은 액수였다. 이 사건은 우리 법 제도에서 쌍방 폭행으로 규정되는 순간, 정당방위로 인정받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구제가 얼마나 박한지를 여실히 보여준다.


그럼 어떻게 하란 말인가. 죽일 듯이 달려드는 상대 앞에서, 그저 손 놓고 맞고만 있으란 말인가? 내 몸뚱아리를 샌드백처럼 내어주고 아무런 저항도 하지 말아야 하는가? 몸이 튼튼한 사람이라면 그렇게 해도 될지 모른다. 말로는 ‘정당방위’가 존재한다지만 실상은 그 방어를 입증하는 과정이 너무나 복잡하고 어렵다. 그렇다면 우리가 택해야 방법은 이것이다. 맞서는 게 아니라 피하는 것. 삼십육계 줄행랑이다.

 

답답하고 분하고 못마땅하겠지만, 싸움은 피하고 봐야 한다. 한발 물러서는 용기가 결국은 내 자존심과 몸과 재산을 지키는 최선의 방패가 된다. 정당방위를 주장하기보다 정당방위를 행사하지 않아도 되는 상황을 만드는 것이 현명한 선택이라 생각된다.

 

(사실관계는 당사자 보호 차원에서 일부 각색한 것으로, 실제 사건과 완전히 동일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박세희 변호사 soon@tsisalaw.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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