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석방은 형기의 일정 부분을 채운 수형자를 사회로 복귀시키는 제도다. 그러나 그동안 심사 과정이 외부에 거의 공개되지 않아 ‘깜깜이 결정’이라는 비판이 반복돼 왔다. 특히 재벌 총수나 사회적 관심 사건 수형자가 가석방될 때마다 “어떤 기준으로 결정됐는지 알 수 없다”는 지적이 이어졌다.
심사 과정의 투명성을 높여야 한다는 요구도 꾸준히 제기됐고, 법무부는 2021년 가석방심사위원회 회의록을 5년이 경과하면 공개하기로 했다.
법무부는 지난달 25일 2020년 3월 정기 가석방심사위원회 회의록을 홈페이지에 공개했다. <더시사법률>은 공개된 회의록을 토대로 가석방 심사가 실제로 어떤 기준과 논의를 거쳐 결정되는지 살펴봤다.
2020년 3월 정기 가석방심사위원회는 3월 25일 오후 4시부터 오후 6시 55분까지 법무부 대회의실에서 열렸다. 회의는 당시 법무부 차관이 위원장을 맡아 주재했다. 윤강열, 조남관, 강호성, 최강주, 이용식, 장연화, 홍승희 위원이 참석했다. 간사로는 서기관 김진아, 서기로는 교감 김동욱이 배석했다.
이날 심사 대상자는 총 1015명이었다. 당초 대상자는 1016명이었지만 1명이 형집행정지로 제외됐다. 이전 심사에서 보류됐던 51명도 포함됐다.
당시 전국 교정시설 수용 인원은 5만 3010명이었다. 정원 4만 8130명을 4880명 초과한 상태였다. 수용률은 110.1%였다. 교정시설 과밀수용 상황도 가석방 심사 논의의 배경으로 언급됐다.
사전 검토 단계에서 적격으로 분류된 대상자는 674명이었다. 전체 심사 대상자의 66.4%였다.
겉으로 보면 절반 이상이 가석방 대상처럼 보이지만 실제 심사 구조는 훨씬 엄격했다. 가석방 심사는 형 집행률만으로 결정되는 절차가 아니라 재범 위험과 수형 태도를 함께 평가하는 방식으로 진행되기 때문이다.
특히 이번 심사에서는 ‘필요적 신청’ 대상자 337명이 별도로 검토됐다. 필요적 신청은 일정 요건을 충족하면 원칙적으로 가석방 심사 대상에 포함되는 유형이다.
그러나 이 가운데 실제 적격으로 판단된 인원은 119명에 그쳤다. 반면 부적격 판정을 받은 인원은 184명으로 절반 이상이었다. 형 집행률을 충족했더라도 수형 태도나 범죄 전력 등 다른 요소에서 문제가 발견되면 가석방 대상에서 제외된다는 의미다.
재범 위험과 수형 태도가 핵심 기준
가석방 심사의 핵심 기준은 재범예측지표와 경비처우 등급이었다.
재범예측지표 1급은 재범 위험이 낮은 수형자를 의미한다. 경비처우 S2급은 교정시설 내 관리 위험도가 낮은 단계다. 형기를 일정 부분 채웠다는 사실만으로는 부족하고 재범 가능성이 낮고 수용 생활이 안정적이라는 평가가 함께 나와야 가석방 심사에서 긍정적인 판단을 받을 수 있다.
형 집행률 기준도 범죄 유형에 따라 달랐다. 일반 범죄는 형기의 70% 이상을 복역해야 검토 대상이 됐다. 강력 범죄의 경우 기준이 더 높았다. 형기의 80% 이상을 채워야 심사 대상에 올랐다.
취업조건부 가석방 신청자의 경우 채용약정서를 전제로 기준을 최대 10% 완화해 심사하기도 했다.
성범죄와 상습범에는 엄격 기준
심사 과정에서는 특정 범죄 유형에 대해 엄격한 기준이 유지됐다. 수형 태도가 불량한 경우 보호관계가 미약한 경우 동종 또는 이종 전과가 많은 상습범은 원칙적으로 부적격 의견이 제시됐다. 음주운전 상습범과 사기 상습범도 엄격한 기준이 적용됐다.
특히 성범죄 사건에 대해서는 사회 분위기와 범죄 특성을 고려해 원칙적 부적격 의견이 다수 제시됐다.
성매매 알선 사건에 대해서도 강경한 기조가 이어졌다. 위원들은 성매매 알선 범죄에 대해 “올바른 성문화를 저해하는 요인”이라는 의견을 제시했다. 해당 사건들은 전원 부적격 의견으로 의결됐다.
회의에서는 “사회 분위기를 고려해 부적격 처리하는 것이 좋겠다”는 발언도 나왔다. 가석방 심사에서 범죄의 사회적 파장도 중요한 판단 기준이 된다는 점을 보여주는 것이다.
적격으로 상정됐지만 심사 과정에서 탈락한 사례도 있었다. 수용 중 발효주를 만들어 마신 수형자는 징벌 가능성이 제기되면서 부적격 의견이 나왔다. 차용금 편취 사건으로 추가 공소가 제기된 수형자도 부적격 처리됐다.
특수존속상해 사건 수형자의 경우 피해자인 모친이 가석방을 원하지 않는다는 의사를 밝히면서 위원 전원이 부적격 의견을 냈다. 형 집행률뿐 아니라 최근 수형 태도와 피해자 의사도 중요한 판단 기준으로 작용한다는 점이 확인된 사례다.
살인 사건 수형자도 가석방 심사 대상에 포함됐다. 홧김에 아내를 살해한 수형자의 경우 치매와 고령 상태가 고려됐다. 출소 후 가족이 입원 치료를 맡겠다는 동의서를 제출했다. 위원회는 이를 고려해 적격 의견을 냈다.
미성년 피해자를 사망하게 한 사건의 수형자 역시 심사 대상에 올랐다. 죄질이 나쁘다는 의견이 제기됐지만 보호 관계가 양호한 점이 반영돼 치료조건부 가석방이 의결됐다.
이번 회의록을 통해 가석방 심사가 단순히 형기 충족 여부만으로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재범 위험, 수형 태도, 범죄의 사회적 영향, 피해 회복 여부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판단된다는 점이 확인됐다. 다만 심사 기준이 명확하게 공개되지 않는다는 지적은 여전히 이어지고 있다.
본지가 최근 법무부에 가석방 심사 기준과 운영 방식에 대해 문의한 결과도 “가석방 심사는 형 집행률뿐 아니라 수형자의 재범 위험성, 수형 생활 태도, 피해 회복 여부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가석방심사위원회에서 심의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가석방 심사 과정의 투명성을 높이기 위해 일정 기간이 지난 회의록을 순차적으로 공개하고 있다”며 “앞으로도 제도 운영의 공정성과 국민 신뢰를 높이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