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AI) 기술을 악용해 대학 동문 등 지인의 얼굴을 합성한 성범죄물을 조직적으로 유포한 일당이 검찰에 붙잡혔다.
이번 사건은 텔레그램을 기반으로 한 치밀한 운영 구조가 드러나 충격을 주고 있다. 법조계에서는 익명성 뒤에 숨은 가해자를 특정하는 '디지털 증거 확보'가 향후 재판의 주요 쟁점으로 떠오르고 있다.
23일 인천지검 여성아동범죄조사부(부장검사 정희선)는 성폭력처벌법 위반 혐의로 20대 운영자 A씨를 포함한 가담자 8명을 구속 상태로 재판에 넘겼다고 밝혔다.
이들은 2022년부터 약 1년 6개월간 인천 지역 대학생 등 피해자 41명의 사진을 도용해 허위 영상물을 제작·유포한 혐의를 받는다.
수사 결과 이른바 ‘지인 능욕방’은 개설자·관리자·일반 참여자로 역할을 나눠 조직적으로 운영된 것으로 조사됐다.
개설자가 초대 링크를 외부에 공유하면 불특정 다수가 유입되는 구조였고, 대화방 이름에는 특정 대학명과 피해자 실명을 조합한 표현이 사용된 것으로 파악됐다.
이들은 수사기관의 추적을 피하기 위해 ‘대피소’ 채널을 별도로 운영하며 참여 인원을 유지했고, 수사 회피 방법까지 공유한 것으로 나타났다. 관리자급인 30대 B씨는 피해자 사진을 2500회 이상 편집해 2000건이 넘는 허위 영상물을 게시한 것으로 확인됐다.
A씨는 범행에 적극 가담한 참여자에게 관리자 권한을 부여하고, 다른 텔레그램 대화방으로 영상물과 초대 링크를 확산하도록 유도한 것으로 조사됐다.
다른 공범들 역시 수백 건에서 수천 건에 이르는 허위 영상물과 불법 촬영물을 보관하고 있었으며 일부는 피해자를 상대로 스토킹 범행까지 저지른 것으로 드러났다.
이번 사건으로 검거된 인원은 총 15명이다. 이 가운데 8명이 구속 상태로 재판에 넘겨졌고 4명은 불구속 상태로 송치됐다. 나머지 3명에 대해서는 경찰 수사가 진행 중이다.
성폭력처벌법 제14조의2 제1항은 반포 등을 목적으로 사람의 얼굴이나 신체 등을 의사에 반해 성적 욕망이나 수치심을 유발할 수 있는 형태로 편집·합성한 경우 처벌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검찰은 경찰과 공조해 텔레그램 본사에 국제 공조를 요청하고 개설자와 관리자 신원을 특정했다고 설명했다. 또 디지털성범죄피해자지원센터와 연계해 영상물 삭제 및 유포 차단 조치를 진행하고, 피해자에 대한 심리 치료와 법률 지원도 제공하고 있다고 밝혔다.
검찰 관계자는 “피고인들에 대해 범행에 상응하는 처벌이 이뤄질 수 있도록 공소 유지에 만전을 기하겠다”고 말했다.
다만 법조계에서는 딥페이크 성범죄의 특성상 실제 영상 제작자와 유포자를 특정하는 과정이 재판 결과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크다고 본다.
이와 관련해 2023년 서울중앙지방법원은 허위 영상물 제작·반포 혐의로 기소된 피고인에게 무죄를 선고한 바 있다. 당시 디지털 포렌식 결과 범행 관련 자료가 발견되지 않았고, 텔레그램 계정의 실제 사용자가 피고인이라는 점도 입증되지 않았다.
재판부는 “검사가 제출한 증거만으로는 범행을 인정하기 부족하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익명성이 강한 해외 메신저를 이용한 딥페이크 범죄의 경우 계정 사용 주체와 제작 기기, 접속 기록 등이 명확히 입증되지 않으면 유죄 인정이 쉽지 않다는 지적이 나온다.
법률사무소 로유 배희정 변호사는 “딥페이크 범죄는 피해 확산 속도에 비해 행위자 특정이 어렵다”며 “수사 단계에서 디지털 증거 확보와 국제 공조 여부가 판결 결과를 좌우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