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대 법관 이탈 가속…‘75세 시니어 판사제’ 카드 꺼낸 대법원

  • 등록 2025.04.23 16:3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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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사 운용 위한 입법 정비 불가피

 

숙련된 중견 법관들의 ‘줄사표’가 이어지면서 사법부 재판 역량 저하 우려가 커지고 있다. 법원은 재판 지연 문제를 완화하고 베테랑 법관을 붙잡기 위해 정년 이후에도 재판을 맡기는 ‘시니어 판사제’ 도입을 본격 검토하고 있다.

 

23일 법원행정처 등에 따르면 사법부를 떠나는 법관 수는 매년 80~90명 수준을 유지하며 최근 5년간 430명을 넘어선 것으로 나타났다.

 

2021년 91명, 지난해 94명에 이어 올해도 벌써 80명의 판사가 법복을 벗었다. 이 가운데 상당수는 정년인 만 65세보다 이른 50대 초반에 퇴직한 중견 판사들이다. 퇴직자 평균 연령은 51.4세, 평균 근무 연수는 19년으로 집계됐다.

 

법조계에서는 대형 로펌으로의 이직을 주요 원인으로 지목한다. 재판 경험이 풍부한 법관은 송무 역량과 사건 통찰력을 갖춘 인력으로 평가돼 민간 시장에서 수요가 높다는 분석이다.

 

법무법인 청 곽준호 변호사는 <더시사법률>과의 통화에서 “50대 초반은 경력이 충분히 축적됐고 정년도 남아 있어 가장 좋은 조건으로 로펌에 이직할 수 있는 시기”라고 설명했다.

 

문제는 재판 실무의 핵심 축을 담당해 온 법관들이 잇따라 이탈할 경우 재판 운영의 안정성과 효율성이 저하될 수 있다는 점이다. 직업법관 중심 구조에서 축적된 경험은 중요한 자산이기 때문에 베테랑 판사의 공백은 단순한 인력 감소 이상의 영향을 미친다는 지적이 나온다.

 

현행 제도상 법관의 임기와 정년은 헌법과 법률에 의해 규율된다. 헌법은 법관이 헌법과 법률에 따라 양심에 의해 독립해 심판하도록 규정하고, 일반 법관의 임기를 10년으로 하되 법률이 정하는 절차에 따라 연임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정년 역시 법률로 정하도록 하는 이른바 ‘법정주의’를 채택하고 있다(서울행정법원 2012구합3095).

 

현재 판사의 정년과 연임 절차는 법원조직법에 따른다. 판사는 10년 단위 임기마다 연임 심사를 거치며, 법관인사위원회 심의와 대법관회의 동의를 통해 연임 여부가 결정된다. 근무 성적이 현저히 불량하거나 품위를 손상한 경우에는 연임이 제한될 수 있다는 점도 판례에서 확인된다(서울행정법원 2012구합3095).

 

법원이 검토 중인 시니어 판사제는 정년 체계와의 관계에서 입법적 정비가 필요하다는 분석이 나온다. 헌법재판소는 법관 정년 규정이 사법 인력의 신진대사를 촉진하고 재판 능력 저하 가능성에 대비하기 위한 장치라며 합헌 결정을 내린 바 있다(헌법재판소 2001헌마557).

 

정년 이후 재판 업무를 수행하도록 하려면 단순한 내부 운영 지침이 아니라 법률상 근거 규정 신설이 필요하다는 의미다.

 

제도 설계 방식도 쟁점이다. 정년 자체를 70~75세로 상향하는 방안과 정년 퇴직 후 별도의 법적 지위를 부여해 재판을 맡기는 방안이 거론된다. 어느 경우든 헌법상 법관 신분 보장과 사법 독립 원칙에 부합해야 한다는 전제가 따른다.

 

대법원이 검토하는 방안은 일정 경력 이상의 법관을 선발해 정년 이후에도 70~75세까지 재판 업무를 담당하도록 하는 방식이다. 숙련 인력의 단절을 최소화하겠다는 취지다.

 

해당 안건은 지난달 사법정책자문위원회 회의에서 본격적으로 논의됐다. 조희대 대법원장은 제도 도입에 적극적인 의지를 보인 것으로 전해졌다. 자문위는 제도화 필요성에 공감하고 관련 건의를 전달했다.

 

회의에서는 시니어 판사의 업무 범위를 단순 민사 사건에 한정해서는 안 된다는 의견도 제시됐다. 경륜을 활용할 수 있는 다양한 유형의 재판에 참여시켜야 실효성이 있다는 취지다.

 

또한 신임 판사 임용 여력을 확보하기 위해 정원 외로 운용하는 방안이 유력하게 거론됐다. 보수 체계는 재판 업무 축소에 맞춰 일정 부분 감액하되 과도한 감액은 유인 효과를 떨어뜨릴 수 있다는 점에서 연금과의 연계성까지 고려한 설계가 필요하다는 의견이 나왔다.

 

자격 요건은 일정 기간 이상 법관으로 재직한 경력이 있는 사람으로 한정하는 방안이 검토되고 있다.

 

곽 변호사는 “수십 년 경력의 시니어 판사가 재판에 참여하면 법원이 외부 영향에서 보다 자유롭다는 신뢰를 줄 수 있고 젊은 판사의 업무 부담도 완화할 수 있다”며 “재판 보조 인력을 강화해 업무를 분산하는 방안도 병행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설아 기자 seolla@sisalaw.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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