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동 인구가 많은 강남의 먹자골목. 비까지 추적추적 내려 좁은 골목은 더 복잡해 보였다. 그 번잡함 속에서 한 남자는 자리에 앉아 무언가에 몰두하고 있었다. 온몸이 비에 젖는 줄도 모르고 인형 뽑기에 집중하던 그는 근처 고시원에 사는 30세 정모씨였다.
정씨의 취미는 인형 뽑기였다. 특별한 직업 없이 강남 논현동의 한 고시원에 살며 수중에 돈이 생기면 모두 인형 뽑기에 탕진했다. 어쩔 땐 하루 60만원 이상을 쓸 정도로 광적이었다. 그러나 정작 내야 할 고시원비는 밀리기 일쑤였다.
2008년 10월, 고시원 생활을 5년째 이어가던 정씨의 경제적 상황이 극도로 악화되었다. 고시원비 17만원과 향토예비군법 위반 벌금 150만원, 휴대전화 미납 요금 60만원이 밀려있었고 개인적 질병으로 인한 수술비 마련도 시급했다.
그리고 그달 20일은 정씨가 밀린 고시원비를 내기로 한 날이었다. 그런데 정씨는 고시원비를 마련하는 대신 자신의 방 침대에 휘발유를 뿌리고 불을 붙였다.
2008년 10월 20일 오전 8시 20분, 정씨의 방화로 갑자기 발생한 화재에 놀란 사람들이 각 방에서 뛰쳐나왔다. 해당 고시원에는 총 85개의 방이 있었고, 정씨의 방은 3층이었다. 정씨는 뿌연 연기로 뒤덮인 3층 복도에 미리 나와 있다가 화재를 피해 나온 사람들을 향해 회칼을 휘둘렀다.
등산용 랜턴을 부착한 검은 털모자, 검은색 고글, 검은색 상의와 과도 2개를 넣어둔 검은색 건빵바지를 착용한 상태였다.
그의 칼부림은 마구잡이였고 무차별적이었다. 고시원에 살던 사람들은 이유도 모른 채 그의 공격에 쓰러졌다. 가장 먼저 희생된 사람은 중국 동포 A씨였다. 중국에 있는 아들의 수술비를 마련하려고 한국에 나와 있던 중 변을 당했다. 정씨는 이어 마주친 취업 준비생 B씨의 복부를 찌르고 4층으로 이동했다.
4층 복도에는 40대 여성 C씨와 유학 중 한국으로 돌아와 학비를 벌던 20대 여성 D씨가 나와 있었다. 정씨는 그들에게도 망설임 없이 다가가 50cm의 회칼을 휘둘렀다. 공격은 복부와 목 주변에 집중됐다.
고시생 E씨는 계단에서 기다리고 있던 정씨와 마주쳤다. E씨 역시 정씨의 칼에 자상을 입었지만, 계단을 뒹굴며 내려와 고시원에서 탈출할 수 있었다.
구조를 위해 경찰과 소방관들이 현장에 도착한 시간은 오전 9시였다. 소방대원들은 화재를 진압하면서 아직 내부에 남아 있는 사람들을 한 명씩 구조했다. 범행을 저지르고 자신의 방에 숨어있던 정씨도 소방관에 의해 구조되었다.
현장에서 그 모습을 지켜보던 경찰은 그의 특이한 인상착의와 피 칠갑이 된 몸을 보고 그가 범인임을 직감했다. 정씨는 현장에서 체포되었다.
범죄 전문가들은 정씨의 범행을 ‘묻지마 살인’으로 판단했다. 그의 방에서 발견된 일기장에는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는 내용만이 빼곡했다. 사회에 대한 불만을 끝내 살인이라는 극단적인 행위로 해소한 것이다.
경찰에 따르면 정씨가 범행 전까지 인형 뽑기에 들인 돈이 최소 수천만원이라고 한다. 동전 몇 개로 결과를 만들어 내는 인형 뽑기는 정씨에게 현실과 다른 질서를 제공하는 공간이었을지 모른다.
노력이나 책임 없이도 즉각적인 보상을 주는 구조에 탐닉한 채 그는 자신이 해결해야 할 현실에서 도피하고 있었다. 통제되지 않는 욕망과 현실에서의 좌절, 그 괴리에서 그는 평범한 사람들의 삶을 해치는 것으로 본인의 왜곡된 감정을 분출했다.
이 사건으로 총 6명이 사망했고 7명이 부상을 당했다. 살인 및 현주건조물방화치사 등의 혐의로 법정에 선 정씨는 우울증과 심신미약을 주장했지만, 재판부는 이를 받아주지 않았다.
2009년 5월, 법원은 정씨에게 사형을 선고했다. 범행수단의 잔혹성, 반성 없는 태도, 재범 위험성 등이 양형에 반영됐다. 현재 정씨는 미집행 사형수로 교도소에 수감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