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해자가 재판부에 ‘공탁금을 받지 않겠다’는 의사를 밝히고 회수동의서를 제출했음에도, 형이 확정된 이후 공탁금을 수령한 사례가 처음으로 확인됐다.
30일 법조계에 따르면 성범죄 혐의로 기소된 A씨는 항소심 과정에서 피해자와의 합의가 무산되자 5000만 원을 형사공탁했다. 그러나 피해자는 “공탁금을 수령할 의사가 없다”며 회수동의서와 함께 엄벌 탄원서를 재판부에 제출했다.
재판부는 피해자의 거절 의사를 고려해 감형 없이 판결을 선고했고, 해당 판결은 대법원에서 확정됐다.
그러나 확정 판결 이후 A씨가 공탁금 회수를 시도하는 과정에서 피해자가 이미 공탁금을 수령한 사실이 확인됐다.
문제는 재판부가 피해자의 회수동의서를 근거로 감형 없이 항소를 기각했음에도 정작 공탁자는 공탁금을 회수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공탁자는 회수 요건이 충족됐다고 판단했지만 피해자는 별도의 절차 없이 공탁소를 통해 공탁금을 출급받았다.
현행 공탁제도상 공탁자가 공탁금을 회수할 수 있는 요건은 △피해자가 회수에 동의한 경우 △공탁물을 확정적으로 거절한 경우 △무죄 확정 또는 불기소 처분이 내려진 경우로 제한된다.
이와 관련해 <더시사법률>이 법무부 법제처에 질의한 결과 법제처는 “피공탁자의 출급청구권과 공탁자의 회수청구권은 서로 독립적으로 발생한다”며 “피해자가 회수에 동의했더라도 해당 사실이 공탁소에 서면으로 통지되지 않으면 출급청구권은 여전히 유효하다”고 설명했다.
즉 공탁금이 회수되지 않은 상태라면 피해자는 형 확정 이후에도 공탁금 출급을 청구할 수 있다는 것이다.
법제처는 이러한 구조적 한계가 공탁자의 권리를 침해할 소지가 있다는 점에 공감하면서 형사공탁 제도의 악용을 방지하기 위한 입법 논의가 필요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특히 국회에 계류 중인 공탁법 개정안의 필요성을 인식하고 있으며 합리적인 제도 개선이 이뤄질 수 있도록 국회 논의를 지원하겠다고 덧붙였다.
실제로 국회에 계류 중인 공탁법 개정안(의안번호 제7908호)에는 형사공탁 출급청구가 있을 경우 공탁관이 해당 사건을 담당하는 법원과 검찰청에 통보하도록 하는 내용이 담겨 있다.
다만 이 조항은 사건이 계속 중인 경우에만 적용돼 선고가 확정된 이후에는 통보 의무가 사라진다는 점에서 제도적 공백이 남아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법무법인 청 곽준호 변호사는 “피해자의 출급 의사를 재판부가 확인하고도 이를 공탁소에 통지하지 않으면 아무런 효력이 없는 현행 구조는 명백한 법적 사각지대”라며 “피해자의 출급 이전에 재판부가 공탁소에 반드시 통보하도록 의무화하는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