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약서에 적힌 문구가 명확하다면 당사자의 속내나 사전 협의 내용과 무관하게 문언 그대로 해석해야 한다는 대법원 판단이 나왔다.
대법원 2부는 A씨가 B씨 등 2명을 상대로 제기한 약정금 청구 소송 상고심에서 원고 패소로 판결한 원심을 파기하고 사건을 인천지법으로 돌려보냈다고 12일 밝혔다. 주심은 오경미 대법관이다.
재판부는 “계약 당사자 사이에 계약 내용을 서면으로 작성한 경우 당사자의 내심 의사와 관계없이 서면에 기재된 내용에 따라 표시행위에 부여된 의미를 합리적으로 해석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어 “문언의 의미가 명확하다면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문언대로 의사표시의 존재와 내용을 인정해야 한다”고 판시했다.
쟁점은 매매계약서 하단 특약사항에 적힌 ‘양도소득세는 매수인이 부담하기로 한다’는 문구의 해석이었다. 대법원은 해당 문언의 객관적 의미가 토지 매매로 인해 매도인에게 부과되는 양도소득세 전부를 매수인이 부담한다는 취지로 명확하다고 봤다. 감면 대상에 해당한다는 전제를 포함한 제한적 의미로 볼 근거는 문언상 찾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원심은 매매 당시 양도소득세 규모에 관한 사전 논의가 있었을 가능성 등을 들어 특약의 의미를 달리 해석했다. 그러나 대법원은 처분문서 해석에 관한 법리를 오해한 잘못이 있다고 지적했다.
사건은 2021년 충북 진천군 소재 토지 매매계약에서 비롯됐다. A씨는 해당 토지를 9억4000만원에 B씨 등에게 매도했다. 계약서에는 양도소득세를 매수인이 부담한다는 특약이 포함됐다.
B씨 등은 2022년 3월 매매대금을 지급하고 소유권이전등기를 마친 뒤 세무법인을 통해 해당 토지가 조세특례제한법상 자경농지 세액감면 대상에 해당한다는 전제로 양도소득세와 지방소득세 등 9915만원을 신고했다. 이 금액은 A씨 측에 지급됐다.
그러나 세무 당국은 감면 대상에 해당하지 않는다며 차액과 가산세 등 1억7525만원을 추가로 고지했다. A씨는 이를 매수인 측에 전달했으나 지급받지 못하자 1억9323만원을 직접 납부한 뒤 소송을 제기했다.
1심은 계약 문언에 따라 피고들이 공동으로 해당 금액을 지급해야 한다고 판단해 원고 승소 판결했다. 반면 2심은 감면을 전제로 계약이 체결된 것으로 보인다며 1심을 취소하고 원고 패소로 판결했다.
대법원은 계약서 문언이 명확한 이상 이를 넘어선 추정이나 사전 협의 사정을 들어 내용을 제한적으로 해석할 수 없다고 봤다. 이번 판결은 처분문서 해석에서 문언의 객관적 의미를 우선시해야 한다는 기존 법리를 재확인한 것으로 평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