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수 피해자 사건에서 합의는 어떻게 해야 할까

  • 등록 2025.05.14 16:1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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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해 회복 가능성 따라 전략적으로
현실적 제안 통해 최대한 합의해야

 

피해자가 여럿인 형사사건에서는 합의가 결코 쉽지 않다. 모든 피해자와 원만히 합의하는 것이 이상적이지만, 현실에서는 연락이 닿지 않거나, 아예 거절 의사를 분명히 밝히는 경우도 많다. 무엇보다 피해자마다 사건에 대한 감정의 결과 입장이 다르기 때문에 같은 방식으로 접근했다가는 오히려 역효과가 날 수 있다.


얼마 전 내가 맡았던 딥페이크 사건도 마찬가지였다. 중학교 3학년 학생이 같은 학교 여학생 16명의 얼굴을 합성한 딥페이크 이미지를 제작해 텔레그램에 유포한 사건이었다. 일부 피해자의 에스크 계정에서 나온 성적 질문을 캡처해 게시하기도 해 모욕 혐의도 함께 적용됐다. 형사사건과 동시에 학폭위 처분도 진행됐고, 피해자 보호자들은 매우 강경한 태도를 보였다.


의뢰인이 성인이었다면 무조건 형사 공판까지 갔을 사안이었지만, 미성년자인 점을 감안해 나는 사건의 목표를 ‘최대한의 합의’와 ‘가정법원 송치’로 결정했다. 다만 의뢰인의 경제 사정이 어려웠기 때문에 처음부터 모든 피해자와의 합의를 기대하기는 어려웠다. 


우선 접촉 가능한 피해자들에게는 사과문, 사정서, 재범 방지 계획 등을 정리해 여러 차례 전달했다. 합의 시도는 한두 번으로 끝나지 않았다. 나는 3개월 동안 주기적으로 연락하며 감정적인 호소는 최대한 배제하고, 피해자가 알고 싶어하는 정보와 사건 처리 방향에 집중했다. 직접 만남을 요구하기보다는 편지와 메시지, 전화로 정중하게 연락을 취했다.


처음엔 연락을 받지 않던 피해자 측도 반복적인 설명과 현실적인 제안을 통해 조금씩 마음을 열었다. 전원과의 합의에는 이르지 못했지만 그 과정과 노력을 법원에 충실히 소명했다. 결과적으로 이 사건은 우리가 원했던 대로 가정법원으로 송치되어 봉사 및 교육이수 처분으로 사건이 마무리됐다.


다수 피해자가 있는 사건에서 ‘몇 명과 합의했는가’도 중요하지만, 합의 과정을 어떻게 설계하고, 어떤 방식으로 접근했는가 또한 중요하다. 경제적 여유가 있다면 최대한 많은 피해자와 합의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하지만 여건이 그렇지 않다면 피해 회복 가능성과 설득 가능성을 기준으로 우선순위를 정해야 한다. 합의금을 균등하게 배분하는 방식도 고려해 볼 수 있다.


무계획한 접근은 결국 아무와도 합의하지 못하게 만들 수도 있다. 모든 사건이 합의로 끝나는 것은 아니지만, 피해자가 많을수록 구조화된 방법이 필요하다. 모든 것을 포기하는 대신, 설득 가능성 있는 일부부터 차근차근 접근하는 등 사건을 해결해 나가야 한다.

배희정 변호사 soon@tsisalaw.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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