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성문 수십 장 제출했지만… 결국 ‘피해 회복 없다’며 실형

  • 등록 2025.05.30 17:1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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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의 없는 반성문은 참고용일 뿐

지난 29일 본지에 도착한 A 씨의 편지에는 허탈한 심경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중고거래 사기로 구속된 A 씨는 매주 반성문을 써왔고, 피해자에게 사죄의 뜻도 여러 차례 전했지만, 돌아온 것은 “피해 회복을 위한 노력이 없다”는 말과 함께 내려진 실형 8개월이었다.


사연에 따르면, A 씨는 2024년 7월 19일 종결된 형법 제37조 전단 사건으로 징역 1년 4개월을 선고받았고, 오는 2025년 8월 30일 만기 출소 예정이다. 범행은 중고거래 사기였으며, 이후 추가 기소된 별건 역시 같은 시기 발생한 유사 사건이었고 범행 규모도 작았다.

 

그러나 검찰의 기소가 늦어 병합되지 못했다.
A 씨는 “형편상 피해자와 합의하지 못했다”며 “차후 경제력이 생기면 반드시 변제하겠다는 뜻을 반성문 수십 장에 담아 재판부에 전달했고, 피해자께 진심으로 사죄드린다는 말도 빠짐없이 전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형법 제37조 후단과 제39조가 적용되는 사안인데도 결국 실형이 선고됐다. ‘합의 노력을 안 했다’는 판단은 너무 가혹하게 느껴졌다”고 토로했다.


또한 “할 수 있는 건 오직 반성문과 의견서를 통해 제 진심을 전하는 것이 전부였다. 1년 넘게 주 1~2통씩 꾸준히 반성문을 제출했지만, 추가 사건을 맡은 재판부는 ‘피해 회복이 없어 엄벌이 불가피하다’는 말만 남겼다.”라고 전했다.


A 씨는 “이번 사건은 앞선 전단 사건보다 범행 규모도 작고, 같은 시기에 저지른 일이었다”며 “검사가 조금만 빨리 기소했더라면 결과는 달랐을 것”이라며 허탈함을 감추지 못했다.


실제 A 씨처럼 합의가 어려운 피고인과 그 가족들은 반복적인 반성문과 탄원서 제출이 감형으로 이어질 거란 기대를 갖는다. 그러나 최근 법원은 반성문을 사실상 ‘참고용’으로만 간주하고 있다.


지난 5월 20일 대법원 양형위원회가 연 기자간담회에서 최환 상임위원은 “범행을 인정한 구체적 경위, 피해 회복 노력, 재범 방지를 위한 자발적 노력 등이 있어야 진지한 반성으로 인정된다”며 “반성문의 매수나 분량은 중요하지 않다”고 밝혔다.


서초동의 부장판사 출신 변호사는 <더 시사법률>에 “합의 없는 반성문은 사실상 보지 않는다”며 “판사 시절, 가족이 지인들 이름으로 탄원서를 수십 장 넘게 보내는 경우가 있었지만 실질적으로 의미가 없다”고 말했다.


‘AI 반성문’과 ‘대필 반성문’ 논란 이후, 합의 없는 반성문에 대한 신뢰는 법조계 안팎에서 더욱 낮아졌다. A 씨는 “이번 판결을 통해 반성문이 양형에 거의 영향을 주지 않는다는 걸 실감했다”고 했다.


이어 그는 “개인 변호인을 선임할 형편도 되지 않았다. 변호사를 살 돈이 있다면 그걸로 합의나 변제를 하는 게 먼저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법조계는 요즘은 같은 범죄라도 보이스피싱처럼 조직적 범행으로 분류되는 사건들이 많기 때문에 단순한 합의만으로는 선처를 받기 어렵다고 입을 모은다. 합의가 선행되더라도 조직 내 가담 정도와 역할을 변호인을 통해 명확히 밝히지 않으면 감형도 쉽지 않다는 것이다.


A 씨는 병합이 안 된 점에 대해서도 억울함을 나타냈다. 그는 “검사가 일부러 늦춘 건 아니겠지만, 기소가 늦어 병합이 안 되면 형법 제37조 후단과 제39조 적용은 어렵고, 형량도 따로 받아야 한다. 같은 범행인데 결과는 완전히 달라졌다”라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 BK파트너스 백홍기 대표변호사는 “검찰은 형사소송법상 구속 피의자에 대해서는 원칙적으로 10일(최대 20일) 이내에 기소 여부를 결정해야 하고, 불구속 피의자에 대해서는 범죄의 경중에 따라 적용되는 공소시효 기간 내에 기소해야 한다. 따라서 구속이든 불구속이든 모두 법률이 정한 명확한 기한이 존재한다”고 설명했다.


그는 “간혹 불구속 사건의 경우, 기소가 수개월, 길게는 1년 이상 지연되는 사례도 적지 않다”며 “기소 시점이 늦어 병합되지 않으면 형법상 일괄처리의 이익을 누릴 수 없게 되고, 결과적으로 형량에도 큰 차이가 발생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이 경우, 변호인이 기소된 사건의 재판부에 병합을 위해 기일을 속행하여 달라고 요청함과 동시에 담당 검사에게 기소 촉구를 요청하는 것이 현실적인 방법”이라고 조언했다.

이소망 기자 CCJHI@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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