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년 전 경기도 안산에서 부부를 흉기로 찔러 금품을 빼앗은 혐의로 기소된 40대 남성이 국민참여재판을 신청한 뒤 첫 재판에서 이를 철회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해당 피고인은 지난달 11일 “기소됐는데 재판이 열리지 않는다”며 “자신과는 무관한 일”이라고 주장하는 억울한 사연을 본지에 보낸 바 있다.
지난 8일 전주지방법원 제12형사부(김도형 부장판사) 심리로 열린 공판준비기일에서 피고인 40대 A씨는 국민참여재판 의사확인서를 제출했으나 이날 법정에서는 입장을 바꿨다.
재판부가 철회 이유를 묻자 A씨는 “재판이 하루 만에 끝날 수 있다는 말을 들었다”며 “신청을 취소하고 싶다”고 답했다.
이에 재판부는 “국민참여재판은 하루에 끝날 수 있지만 준비 기간이 길고 절차도 복잡하다”며 “그 결정이 피고인에게 유리할지 불리할지 지금으로서는 단정하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A씨는 다시 “변호사에게 물어보니 재판이 한 번에 끝난다고 해서… 내가 잘 몰랐다. 그러면 다시 원래대로 국민참여재판을 받겠다”며 입장을 번복했다.
하지만 재판부는 A씨가 제도를 정확히 이해하지 못한 상태에서 결정을 번복한 점을 감안해 “변호인과 충분히 상의하고 다음 기일에 명확한 의사를 밝혀 달라”며 다음 기일을 8월 19일로 지정했다.
국민참여재판은 배심원단이 유무죄와 양형에 대한 의견을 제시하는 형사재판 제도로, 판결에 법적 구속력은 없지만 재판부는 이를 참고해 선고한다.
A씨는 2001년 9월 8일 경기도 안산시 단원구의 한 연립주택에 침입해 집주인 B씨를 흉기로 찔러 살해하고 현금 100만원을 훔쳐 달아난 혐의로 기소됐다.
경찰은 당시 사건 현장에서 B씨의 아내를 결박하는 데 사용된 검은색 테이프 등 증거물을 확보해 유전자 분석을 의뢰했으나 당시 기술력의 한계로 DNA를 검출하지 못했다.
이 사건은 장기 미제로 남아 있었으나 2015년 형사소송법 개정으로 강도살인죄의 공소시효가 폐지되면서 수사에 속도가 붙었다.
경찰은 2020년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보관 중이던 증거물에 대한 재감정을 의뢰했고 DNA 분석을 통해 A씨를 특정했다. 당시 A씨는 특수강간죄로 이미 징역 13년을 선고받아 전주교도소에 수감 중이었다.
사건을 넘겨받은 전주지검은 계좌 추적과 법의학 자문 등 보완 수사를 거쳐 2024년 12월 A씨를 강도살인 혐의로 기소했다.
법무법인 청 곽준호 변호사는 “국민참여재판은 배심원이 사실관계 판단에 참여한다는 점에서 피고인에게 유리하게 작용할 가능성도 있지만 사건의 성격과 증거 구조에 따라 전략적 판단이 달라질 수 있다”며 “특히 강도살인과 같은 중대 범죄는 배심원의 법감정이 양형 의견에 영향을 미칠 수 있어 신중한 선택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이어 “피고인이 제도의 취지와 절차를 충분히 이해하지 못한 상태에서 신청과 철회를 반복할 경우 방어권 행사에 혼선이 생길 수 있다”며 “변호인과 충분히 상의해 증거의 쟁점, DNA 감정의 신빙성, 공소 유지 가능성 등을 종합적으로 검토한 뒤 재판 방식에 대한 명확한 입장을 정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