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탁은 무의미?”…성범죄·경제범죄 혼동한 ‘공탁 무용론’

  • 등록 2025.07.22 15:42: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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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범죄 중심 개정된 공탁법…
재산범죄선 감형 요소로 여전히 유효

 

재산범죄로 재판을 받는 피고인들 사이에서 공탁이 양형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이른바 ‘공탁 무용론’이 확산되고 있다.

 

그러나 이는 성범죄와 재산범죄의 구조적 차이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데서 비롯된 오해에 가깝다. 실제 판결문을 살펴보면 공탁은 여전히 감형 사유로 유의미하게 작용하고 있다.

 

22일 법조계에 따르면 지난해 개정된 공탁법은 성폭력·폭행 사건 등에서 피해자의 동의 없는 공탁이 감형 수단으로 악용되는 문제를 막기 위해 마련됐다.

 

개정 공탁법의 핵심은 법원이 피해자의 의견을 반드시 확인하도록 한 데 있다. 다만 사기 등 경제범죄에서는 사정이 다르다. 재판부들은 피해자의 수령 여부와 관계없이 공탁금이 실질적인 피해 회복에 기여했다면 여전히 정상참작 요소로 평가하고 있다.

 

 

2024년 부산고법은 “사기죄와 같은 재산범죄에서는 피해자의 연락처를 알 수 없거나 공탁금 수령을 거부하더라도 상당한 금액의 공탁은 양형 요소로 고려될 수 있다”고 판시했다.

 

같은 해 창원지법은 피해금액 1억원 중 9200만원을 변제한 피고인에 대해 피해자 의견 청취가 없었음에도 전액 회복에 준하는 사정을 참작해 집행유예를 선고했다.

 

일각에서는 “재산범죄는 변호사보다 합의가 중요하다”며 변호사 비용 대신 합의금에 집중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그러나 실제 재판에서는 피해 회복 수준뿐 아니라 피고인의 범행 가담 정도, 역할, 실질적 이익의 유무가 중요한 양형 판단 요소로 작용한다. 이러한 법률적 판단을 비법률가인 피고인이 직접 소명하기에는 현실적인 한계가 있다.

 

판례에서도 이러한 점은 확인된다. 2025년 서울남부지법은 전세자금대출 사기 혐의로 총 피해금 약 2억원 중 2000만원(약 10%)만 공탁한 피고인에게 징역 1년 6개월의 실형을 선고했다. 당시 1심에서는 국선변호인이 변론을 맡았다.

 

그러나 항소심에서는 사선 변호인이 피고인의 가담 정도가 낮고 실질적인 이익도 크지 않았음을 소명했고 추가 합의나 공탁 없이도 집행유예로 감형됐다.

 

2024년 인천지법 역시 피해액 2680만원 중 620만원(약 23%)만 공탁됐고 피해자가 수령을 거부하며 엄벌을 탄원한 사건에서 피고인의 범행 동기와 제한적인 역할, 초범 여부, 사회적 배경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집행유예를 선고했다.

 

서울중앙지법의 보이스피싱 수거책 사건에서도 공탁금은 20만원에 불과했고 피해자는 수령을 거부했지만, 재판부는 통장 내 피해금 몰수 가능성과 피고인의 실질적 수익이 크지 않다는 점을 들어 실형이 아닌 집행유예를 선고했다.

 

2025년 대전지법은 양형 기준 해석을 비교적 명확히 제시했다. 재판부는 “실질적 피해 회복은 손해액의 약 3분의 2 이상을 회복한 경우이며 상당한 피해 회복은 그보다 낮은 수준”이라고 밝혔다.

 

판례 분석에 따르면 ‘상당한 회복’은 통상 전체 피해금의 30~50% 수준에서 긍정적으로 평가된다. 피해자의 수령 여부나 탄원 여부도 일정 부분 영향을 미치지만 핵심은 공탁 금액과 피고인의 가담 정도, 실질적 이득의 유무다.

 

형사전문 변호사들은 “보이스피싱이나 리딩방 사기 같은 조직적 범죄의 경우 피고인이 피해금 전액을 모두 부담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며 “가담 정도와 실제 수익 규모에 상응하는 피해 회복 노력만으로도 감형에 도움이 될 수 있다”고 설명한다.

 

형사사건에서 합의가 최선이라는 점은 분명하다. 그러나 모든 사건이 합의로 마무리되지는 않는다. 일부 피해자는 전액을 돌려받고도 처벌을 원하고, 피해자와 연락조차 닿지 않는 경우도 적지 않다.

 

이런 상황에서 공탁은 피고인의 책임감과 변제 의지를 보여주는 수단이자 재판부에 유리한 정상 참작 사유를 형성하는 중요한 요소가 된다.

 

결국 “공탁은 양형에 아무 의미가 없다”는 인식은 성범죄와 경제범죄를 구분하지 못한 채 확대 해석된 오해에 불과하다. 재산범죄에서 공탁은 피해 회복 의지를 드러내는 수단으로 양형 판단에서 여전히 유의미하게 작용하고 있다.

 

법무법인 청 곽준호 변호사는 “사건마다 양형 요소를 판단하는 기준은 다를 수밖에 없기 때문에 재판부 성향에 대한 면밀한 분석과 전략 수립이 필요하다”며 “피해금이 1억원이라고 해서 반드시 전액을 변제해야 감형되는 것은 아니고 피고인의 역할과 위치, 실질적 이득을 중심으로 변론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어 “비법조인의 잘못된 조언을 맹신해 대응할 경우 그 피해는 고스란히 피고인에게 돌아간다”며 “형사사건에서는 반드시 전문가의 조력을 받아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설아 기자 seolla@sisalaw.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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