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는 내 손에 빠다코코넛 한 통과 빨간 손수건을 쥐여 주고 떠났다. 잠시 다녀온다는 말만 남긴 채.
나는 매일 밤 손수건에 남은 엄마 냄새를 맡으며 울었다.
할머니는 내게 자식 버리고 간 엄마가 뭐 그리 보고 싶냐며 손수건을 뺏어 문밖 쓰레기통에 던졌다. 그 손수건을 얼마나 찾았는지 30년이 지난 지금도 그때가 떠오른다.
엄마가 없다는 건 호기심 많은 아이들에게 좋은 놀림감이었다. 나는 남들이 쑥덕거리는 소리에 움츠리고 다녀야 했다. 내 마음속엔 언젠가부터 그리움보다 원망이 더 커졌다.
중학교 졸업식을 앞두고 10년 만에 엄마가 나타났다. 엄청난 빚과 함께. 엄마가 돌아오고 하루도 편한 날이 없었다. 우리 집은 엄마가 가져온 빚을 감당할 만큼 형편이 좋지 않았다. 일용직인 아빠가 힘들게 번 돈으로 우리 남매를 키워 온 할머니는 엄마를 용서하지 못했다.
그런데도 나는 엄마 냄새가 너무 그리웠나 보다. 다시는 보고 싶지 않을 만큼 화나고 미웠는데, 이상하게도 그간의 미운 감정은 어느새 사라지고 엄마가 계속 내 옆에 있어 주기를 바랐다.
하지만 행복은 오래가지 않았다. 우리가 보고 싶어서 다시 왔다던 엄마는 또다시 떠나 버렸다. 엄마는 내게 조금 더 커서 결혼을 해서 아이를 갖게 된다면 자신을 이해할 거라 했지만, 두 아이가 생겼는데도 난 엄마를 이해할 수 없었다.
나는 아이들에게 내가 받지 못한 엄마의 사랑을 느끼게 해 주기 위해 노력했다. 여섯 살 이후 빠다코코넛을 먹어 본 적이 없다.
그 과자만 보면 엄마에 대한 원망과 증오가 떠오르는 것 같아 아이들에게도 사 주지 않았다. 어쩌다가 가족끼리 마트에서 보기라도 하면, 이별한 연인을 마주한 것처럼 가슴이 쿵쾅거렸다. 그 과자가 뭐라고…
어느 날 불현듯 그 과자를 사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맛은 그대로겠지? 내가 제일 좋아했던 그 맛. 빠다코코넛을 사서 집으로 돌아왔다. 아이들은 식탁에 놓인 과자를 궁금해하며 한 봉지씩 까먹기 시작했다.
나는 여전히 손을 대지 못하다가 과자가 다 사라질 즈음에야 한 개를 들어 조심스레 냄새를 맡았다. 이게 대체 뭐라고 한참 동안 미워한 걸까. 순간 울컥했다. 그러자 엄마에 대한 원망이 조금씩 누그러지는 것 같았다.
엄마는 지금 어디에 있을까? 혹시 엄마도 빠다코코넛을 보면 내가 생각날까? 그렇다면 엄마도 이 과자를 보며 더 이상 마음 아파하지 않았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