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률사무소 로유] 형사사건 상고, 마지막 기회일까 마지막 관문일까

  • 등록 2025.08.13 18:1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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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고는 기한‧형식 모두 까다로워
사실관계 아닌 법리 검토 과정

항소심이 사실심의 마지막 무대
상고 전략도 항소심에서 시작돼

“대법원까지 가면 상황이 바뀔 수 있나요?” 형사사건 피고인이나 가족들이 항소심 판결 직후 가장 많이 던지는 질문 중 하나다.

 

그러나 상고심은 많은 사람들이 기대하는 것처럼 ‘다시 하는 재판’이 아니다. 형사사건에서의 대법원 심리는 원심 재판의 사실관계를 다시 따지는 절차가 아니라, 원심판결이 법률을 올바르게 적용했는지를 확인하는 ‘법률심’이다.

 

즉, 상고심은 증거를 다시 조사하거나 새로운 증인을 부르는 자리가 아니다. 법 적용 과정에서의 명백한 법리 오해나 위헌·위법 여부, 판례와의 불일치 같은 중대한 법률상 하자가 있는지를 가려내는 절차다.

 

결국 대법원은 사건 전반을 재검토하는 무대라기보다, 법 적용의 오류를 걸러내는 좁고 까다로운 관문에 가깝다.

 

형사소송법 제383조는 상고 사유를 네 가지로 한정한다. 첫째, 판결에 영향을 미친 헌법·법률·명령 또는 규칙 위반이 있는 경우. 둘째, 판결 선고 후 형이 폐지·변경되었거나 사면이 있는 경우. 셋째, 재심청구 사유가 있는 경우. 넷째, 사형·무기 또는 10년 이상의 징역이나 금고형이 선고된 사건에서 중대한 사실오인이 있거나, 형의 양정이 심히 부당하다고 인정할 현저한 사유가 있는 경우다.

 

이 네 가지 사유를 벗어난 주장은 상고심에서 받아들여지기 어렵다. 특히 10년 미만의 형이 선고된 사건에서 “증거가 부족하다”거나 “사실 판단이 잘못됐다”는 식의 주장은 법률심인 대법원에서 심리 대상이 되기 힘들다.

 

절차 또한 상당히 엄격하고 촘촘하게 규정돼 있다. 우선 2심 판결 선고일로부터 7일 이내에 반드시 원심법원에 상고장을 제출해야 하며, 그로부터 20일 안에 대법원에 상고이유서를 내야 한다.

 

이 상고이유서에는 단순히 “판결이 부당하다”거나 “억울하다”는 식의 표현이 아니라 반드시 ‘법률 위반 사유’를 조문과 함께 구체적으로 적시해야 한다. 감정적 호소로는 기각을 피하기 어렵다.

 

실제 대법원 사법연감에 따르면 형사사건 상고심의 대부분이 기각되며, 그중 상당수는 ‘심리불속행’ 제도에 따라 이유 설명조차 없이 “상고를 기각한다”는 단 한 문장만이 판결문에 남는다. 또한 상고심은 대부분 서면심리로 진행된다. 새로운 증거조사나 증인신문은 극히 제한적으로만 허용된다.

 

예를 들어 “피해자의 진술이 거짓이다”라는 주장은 대법원에서 받아들여지기 어렵지만, “피해자 진술 채택이 형사소송법 제308조의2(위법수집증거의 배제)에 위반됐다”와 같이 법령 위반으로 연결되는 주장은 상고심에서 심리될 가능성이 있는 것이다.

 

결국 상고 전략은 항소심에서부터 시작된다. 항소심 단계에서부터 체계적으로 준비되어야 한다. 항소심 단계에서 향후 상고심에서 문제 삼을 수 있는 법령 위반 가능성을 미리 염두에 두고 변론 방향을 설계해야 한다.

 

원심 판단 기준이 기존 대법원 판례와 다른 지점을 찾아내야 하고, 상고이유서는 감정의 호소가 아닌 조문과 판례에 기반한 논리적 서술이어야 하며, 이를 위해서는 법률 전문가의 조력이 필수적이다.

 

이렇듯 상고심은 많은 사람들이 오해하고 있는 것처럼 피고인의 사정을 처음부터 끝까지 ‘다시 들어주는’ 절차가 아니다. 법률심으로서 상고심은 원심판결이 법적으로 타당하게 내려졌는지를 심사하는 제도이며, 그 문턱은 높고 좁다.

 

따라서 형사재판에서 2심은 사실심의 마지막 무대라는 점을 반드시 기억해야 한다. 항소심에서 충분히 다투지 않은 사실이나 증거는 상고심에서 새롭게 제출하거나 주장하기 어렵다.

 

다시 말해, 항소심 단계에서 모든 사실과 증거를 철저하게 제출하고 충분히 다투는 것이 3심 승부의 출발점이자 핵심이 된다.

 

상고를 고민한다면 먼저 냉정하게 자문해야 한다. “단순히 사실 판단에 대한 불만인가, 아니면 법리 다툼에 해당하기 때문인가”부터 판단이 이루어져야 한다.

 

이 질문에 명확하게 ‘법리 다툼’이라고 답할 수 없다면 상고심에서 원하는 결과를 얻기는 쉽지 않다. 가능하다면 항소심에서 모든 전략과 노력을 집중해 재판부를 설득하는 것이 가장 현실적이고 효과적인 길이다.

 

항소심에서 충분히 설득해 성공한다면 상고라는 불확실한 절차를 거치지 않아도 원하는 결과를 얻을 수 있다. 상고심은 미완성의 사건을 구제해 주는 무대가 아니라, 이미 완성된 변론을 법리로 검증하는 마지막 관문이기 때문이다.

배희정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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