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이면 다 되는 감옥... 발리 케로보칸 교도소

  • 등록 2025.08.22 12:16: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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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원의 햇살은 닿지 못하는 그늘
돈만 있으면 침대, 마약, 외출도 가능
수용자 80%가 마약 사범, 10%는 외국인

휴가로 온 발리 여행의 마지막 날 스미냑 해변에서 쓰고 있다. 먼 바다에서 밀려오는 파도 소리가 따뜻하고도 시원한 바람을 서핑하듯 타고 와서 내 뺨에서 부서져 내리기를 수없이 반복하고 있다. 

 

해가 떨어지면서 하늘은 이런저런 열대 과일을 뒤섞어 놓은 다채로운 빛깔의 칵테일 색으로 변해가서 긴 빨대를 꽂으면 단물이 주루룩 흘러나올 듯하다. 발리를 낙원이라 하는 이유를 알 것 같다.

 

귀국하자마자 구치소로 가서 의뢰인들을 접견해야 한다는 생각에 미치자, 문득 세계적으로 악명 높은 ‘케로보칸(Kerobokan)’ 교도소가 바로 차로 10분 거리에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낙원 같은 발리와 대조적으로 이 교도소는 과밀수용으로 유명하다. 

 

정원이 300명 정도인데 수감자가 1600명이 넘는다. 이곳에 있는 수용자들은 거의 80%가 마약 사범이고 10% 이상이 외국인이다. 과밀수용과 열악한 환경 때문에 수용자들에게 정신병, 자살, 전염병도 많다.

 

반면, 이들을 지키는 교도관은 십수 명에 불과하다. 그러니 탈옥도 심심찮게 일어난다. 1999년에는 289명이 탈옥했다가 하루에 104명이 잡히고 185명이 도주했다. 2017년에는 4명의 수용자가 땅굴을 파고 배수로를 통해서 탈옥했고, 그로부터 반년 뒤에는 톱으로 천장을 뚫은 뒤 6미터 높이의 담장에서 뛰어내려 탈옥했다.

이 교도소는 과밀수용을 하는 대신 아침 6시부터 저녁 6시까지 수용자들을 넓은 뜰에 풀어둔다. 고개를 들면 그 어느 나라 하늘보다 넓고 맑은 발리의 하늘이 시원하게 펼쳐지니, 낙원의 하늘을 맛보며 숨통을 틔울 수 있는 것이다.

 

유튜브를 찾아보니 8년 전에 ABC 방송에서 만든 1주일 동안 케로보칸 교도소 안에서 촬영한 다큐멘터리가 있었다. 운동도 하고, 노래도 부르고, 영어를 배우기도 하고, 티셔츠에 프린팅을 하거나 은장식품을 세공하는 일들도 하고, 복싱, 축구, 농구도 한다. 한 달에 한 번 온 가족이 교도소 안에 들어와서 수용자와 함께 뜰에서 지낼 수 있다. 교도관들은 웃는 낯으로 수용자들을 친근하게 대하고 서로 대화도 많이 한다.

 

그러나 캐스린보넬라(Kathryn Bonella)라는 호주 저널리스트가 이곳의 수백 명의 수용자를 인터뷰해서 쓴 ‘호텔 K’라는 책을 보면 이곳은 부패가 심해서 교도관들에게 돈을 주면 무엇이든 할 수 있다고 폭로하고 있다. 

 

돈만 주면 마치 비행기 비즈니스석처럼, 호텔 객실처럼, 더 넓은 감방으로 옮겨주고 침대, 선풍기, 커튼, 샤워기, 음식, 심지어 안전까지 달라진다. 돈을 주면 섹스도, 마약도, 휴대폰 사용도, 심지어 외출도 할 수 있고 인근 식당의 음식도 배달 받아먹을 수 있다.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섹스파티가 열리기도 한다. 반대로 돈이 없으면 벼룩, 쥐, 바퀴벌레가 득실득실하고 정원의 5배를 초과하는 감방에 갇힌다. 교도관들은 식당 직원에게 돈을 주고 추가 음식을 만들어서 수용자들에게 개인적으로 팔아먹기도 한다.

 

이 책에 따르면 인도네시아는 수사부터 재판까지도 뇌물이 통한다고 한다. 많이 주면 수사를 아예 안 하거나 수사를 하더라도 건성으로 하며, 재판에서 판사에게 뇌물을 주면 형량이 떨어진다고 한다. 반대로 뇌물을 조금만 주면 오히려 터무니없는 수사나 중형 선고가 이루어지기도 한다. 

 

현지인보다 돈이 많은 외국인은 현지의 부패한 관리들이나 범죄자들이 일단 외국인을 고소해서 구속을 시켜 놓은 뒤 절박한 상황 속에서 더 많은 뇌물을 받아낼 수 있기 때문에 ‘사냥감’이 된다고 한다. 실제로 발리의 술집에서 술에 마약을 탄 다음 경찰에 신고하지 않는 대가로 현금을 받는 범죄자들이 기승을 부린 적도 있다.

 

누사램봉안 섬에 머무를 때 아무도 없는 이른 아침의 맹그로브 숲에서 카약을 탔다. 맹그로브 나무 뿌리들이 구미호의 다리처럼 어지럽게 드리워진 물가 사이로 노를 저었다. 내 옆에서 카약을 함께 타며 안내해주던 삼십대 중반으로 보이던 현지인 남자는, 발리인들이 흔히 하듯이, “니 하오마”라고 인사로 국적을 물었다. 내가 “아임 코리안”이라고 하자 그는 “안녕하세요”라고 하고는 예상대로 “노스 코리아? 사우스 코리아?” 관문으로 인도했다. 내가 “사우스”라고 답하자, 또 한국 드라마 이야기를 하려나 했는데 뜻밖에도 한숨을 쉬면서 씁쓸하게 웃더니 “인도니지아, 매니 꼬럽. 에브리웨어 꼬럽. 코리아 낫 매니 꼬럽”한다. ‘코럽’은 부패(corrupt)를 말하는 것이었다. 모든 곳에 뇌물이 통한다고 했다.

 

귀국하자마자 구치소에 접견을 갔다. 한 의뢰인은 추가로 고소당해 수사를 앞둔 사건을 해명하기 위해 이런저런 서류를 잔뜩 겨드랑이 밑에 끼고 와서 내게 자세히 설명을 했다. 기소를 앞둔 또 다른 의뢰인은 국민참여재판을 해보고 싶은데 가능하냐고 물어서 잘 할 수 있다고 답해주고 일반 재판과의 장단점을 설명해주었다. 

 

또 다른 의뢰인은 지난 번 재판 때 재판장이 “변호인 말이 일리가 있네요.”라고 하고 검사에게 공소장을 경미한 쪽으로 변경하는 것을 검토해보라고 해서 억울함이 풀릴 것이라는 희망을 품고 있었다. 재판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교도관도 자신에게 변호사를 잘 만난 것 같다고 했고, 아들 재판 걱정에 수술을 미루던 아버지가 마음이 편해져서 수술도 마치고 오셨다고 해서 보람을 느꼈다. 사법시스템도, 변호사 생활도 아직은 낙원이라는 발리보다 우리나라에서 하는 것이 낫다.

 

정재민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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