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보이스피싱 조직원의 ‘현금 수거책’으로 검거된 40대 남성에게 무죄가 선고됐다.
1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남부지법 형사11단독 정성화 판사는 지난 22일 사기방조 혐의로 기소된 A씨(46)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펜션 사업 실패로 생활고를 겪던 A씨는 지난해 7월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올라온 ‘퀵서비스 아르바이트 모집’ 글을 보고 범행에 연루됐다. 해당 글에는 ‘초보자 가능’, ‘일당 당일 지급’이라는 문구가 적혀 있었고, 생활비가 필요했던 A씨는 곧바로 연락했다. 이어 ‘김 실장’이라 불린 인물과 연결된 그는 “회사 관련 서류를 배송하는 단순 업무”라는 설명을 듣고 건당 5만원을 받기로 했다.
A씨는 지시에 따라 특정 메신저 앱을 설치하고, 영등포구 아파트에서 박스를 받아 관악구 지하철역 앞에서 전달하는 일을 세 차례 수행했다. 그러나 박스 안에는 피해자들이 ‘예금담보 대출’이 가능하다는 말에 속아 보낸 체크카드가 들어 있었고, 이 카드와 계좌는 실제 보이스피싱 범행에 이용됐고 결국 약식 기소됐다.
정식 재판을 청구한 A씨는 법정에서 자신은 피싱 범행에 가담하는 줄 몰랐다고 항변했다. 그는 정식 재판을 청구하며 “범죄에 가담한다는 사실을 몰랐다”고 항변했다. 하지만 검찰은 “단순 배송치고 수당이 과도했고, 업무 방식도 매우 이례적이었다”며 A씨가 범행과의 관련성을 충분히 인식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재판부는 A씨의 주장을 받아들였다. 정 판사는 “피고인이 접근매체(체크카드)를 전달한다는 인식이나 의사를 가지고 박스를 운반했다고 볼 증거를 찾을 수 없다”고 밝혔다.
특히 A씨가 조사 과정에서 “택배 박스가 무거워 마약 같은 물건이 아니냐고 물어봤다”고 진술했고, 법정에서도 “박스가 묵직해 카드가 들어 있을 거라 생각하지 못했다”고 말한 점을 근거로 범죄 사실에 대한 증명이 부족하다고 판단했다.
배희정 법률사무소 로유 변호사는 “보이스피싱 수거책 사건에서 검찰은 주로 ‘미필적 고의’를 문제 삼지만, 피고인이 범행을 인식했다고 단정할 증거가 없는 경우 무죄가 선고된다”며 “생활고 속 단순 아르바이트로 시작한 사정과 일관된 진술이 재판부 판단에 영향을 미쳤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