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이 이른바 ‘사법행정권 남용’ 사건으로 기소된 양승태 전 대법원장에게 항소심에서도 징역 7년을 구형하면서 해당 사건의 법적 쟁점에 다시 관심이 모이고 있다. 쟁점은 형법상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죄에 해당하는지, 사법행정권의 범위와 헌법이 보장하는 재판 독립 사이의 경계를 어떻게 볼 것인지다.
3일 서울고등법원 형사14-1부 심리로 열린 항소심 결심공판에서 검찰은 양 전 원장에게 징역 7년을 선고해 달라고 재판부에 요청했다.
함께 기소된 박병대 전 대법관과 고영한 전 대법관에게도 각각 징역 5년과 징역 4년을 구형했다. 이는 1심 구형과 같은 수준이다.
검찰은 “법원 자체 조사에서도 사법행정권 남용 행위가 확인된 바 있다”며 “1심 재판부가 대법원장의 지위와 권한에 대해 지나치게 엄격한 기준을 적용해 잘못된 판단을 내렸다”고 주장했다.
양 전 원장은 상고법원 도입 추진 등 사법부의 이해관계를 위해 여러 재판에 개입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강제징용 손해배상 사건과 전국교직원노동조합 법외노조 사건, 국가정보원 대선 개입 사건 등의 재판 과정에 영향을 미쳤다는 혐의다.
또 법원 내부에서 비판적 입장을 보인 판사들을 ‘물의 법관’으로 분류해 인사상 불이익을 주고 헌법재판소 내부 정보를 수집하도록 했다는 의혹 등 총 47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형법 제123조는 공무원이 직권을 남용해 다른 사람에게 의무 없는 일을 하게 하거나 권리 행사를 방해한 경우 처벌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다만 직권남용죄가 성립하려면 해당 행위가 공무원의 일반적 직무권한 범위에 속해야 하고, 권한 남용으로 인해 현실적으로 권리행사가 방해되거나 의무 없는 일을 하게 한 결과가 발생해야 한다. 그 사이에 상당한 인과관계도 인정돼야 한다는 것이 대법원의 판단 기준이다.
특히 재판 개입 사건에서는 사법행정권과 재판권의 경계가 중요한 기준이 된다. 대법원은 “재판에 관한 사항은 사법행정권자의 직무감독 범위에 포함되지 않으므로 재판관여 행위에 관해 일반적 직무권한이 인정되지 않는다”며 “재판관여 행위가 부당하거나 부적절하더라도 직권남용죄가 성립한다고 볼 수 없다”고 판단한 바 있다.(대법원 선고 2021도11012 판결).
또 직권남용죄가 성립하려면 단순히 부당한 요청이나 권유가 있었다는 사정만으로는 부족하고 실제로 담당 재판부의 권리행사가 방해되거나 의무 없는 일을 하게 한 결과가 발생해야 한다는 점도 강조했다.
이번 사건에서도 재판 개입 의혹과 관련해 해당 행위가 사법행정권 범위에 속하는 행정적 관리 행위인지 아니면 헌법이 보장하는 재판 독립 영역에 대한 관여인지가 핵심 쟁점으로 거론된다.
재판 핵심 영역에 대한 관여로 평가될 경우 재판에 대해 직무권한 자체가 인정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직권남용죄 성립이 부정될 가능성도 있다.
반면 ‘물의 법관’ 분류나 인사 관련 공소사실은 전형적인 사법행정권 영역에 속할 수 있다. 따라서 인사권 행사 과정이 법령상 기준과 절차를 일탈했는지, 실무자에게 의무 없는 일을 하게 했는지, 특정 법관의 직무상 권리가 침해됐는지 등이 판단 요소로 지목된다.
앞서 지난해 1심 재판부는 양 전 원장과 두 전직 대법관에게 모두 무죄를 선고했다.
당시 재판부는 일부 사안에서 재판 개입 시도가 있었다고 보면서도 이를 양 전 원장이 직접 지시하거나 관여했다고 인정하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또 직권남용죄 성립에 필요한 권한 남용과 결과 발생, 인과관계가 충분히 입증되지 않았다고 봤다.
양 전 원장은 이날 최후진술에서 1심 판단의 정당성을 강조하며 검찰의 항소를 비판했다.
그는 “1심 재판부는 수십만 쪽에 달하는 수사 기록과 소송 자료, 이어진 증인신문을 면밀히 검토해 실체적 진실을 밝히려 노력했고 그 결과 무죄 판단을 내렸다”고 말했다.
이어 “검찰은 고정관념과 아집 속에서 흑을 백이라고 주장하며 항소를 제기했고 모욕적인 표현까지 사용하고 있다”며 “이 사건 항소는 기각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함께 재판을 받는 박병대 전 대법관은 “수사가 시작된 지 7년이 지났고 그동안 모욕과 고통의 시간을 보냈다”며 공모 의혹을 부인했다.
고영한 전 대법관도 “재판을 받게 된 것 자체가 송구하다”면서도 무죄 추정 원칙을 강조했다.
서울고등법원은 오는 11월 26일 선고기일을 열고 항소심 판결을 선고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