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사나 수사기관을 사칭해 피해자를 모텔 등에 머물게 하고 반성문을 작성하게 한 뒤 현금 인출을 요구하는 보이스피싱 사건은 어떤 범죄로 처벌될까.
이러한 유형의 범행에서는 사기뿐 아니라 공무원자격사칭, 감금, 강요 등 여러 범죄가 동시에 문제될 수 있다. 최근 경찰은 보이스피싱 조직의 지시에 속아 모텔에 머물며 사실상 ‘셀프 감금’ 상태에 놓였던 피해자를 구조했다.
3일 대전동부경찰서에 따르면 지난달 28일 “아들이 보이스피싱 범죄에 연루된 것 같다”는 부모의 신고가 접수됐다.
경찰은 대전 동구 용전동의 한 모텔로 출동했고, 현장에서 대구에 거주하는 A씨(27)를 발견했다.
조사 결과 A씨는 보이스피싱 조직으로부터 검사를 사칭한 전화를 받은 것으로 확인됐다. 조직원은 “수사 중인 사건에 계좌가 연루됐다”며 대전으로 이동해 모텔에 머물 것을 지시했다.
A씨는 이를 믿고 모텔에 투숙해 나흘 동안 객실에 머물렀다. 조직원은 A씨에게 “지금까지 저지른 잘못을 반성문으로 작성하라”고 요구했고, A씨는 A4용지 10여 장 분량의 반성문을 작성한 것으로 파악됐다.
또 조직원은 “자산 검수가 필요하다”며 현금을 준비하도록 요구했고, A씨는 자신의 돈과 부모에게 빌린 돈 등을 합쳐 약 9000만원을 마련한 것으로 조사됐다.
이처럼 검사나 경찰을 사칭해 현금 인출이나 교부를 유도하는 보이스피싱 사건에서는 보통 사기 또는 사기미수 혐의가 적용된다.
법원은 검사 신분을 사칭해 현금 교부를 시도한 사건에서 사기미수와 공무원자격사칭을 함께 인정한 바 있다.
2016년 수원지방법원 성남지원은 보이스피싱 조직원이 가짜 검사 신분증을 제시하며 피해자에게 “검찰청 안전계좌 절차가 필요하다”고 속여 현금을 건네받으려 한 사건에 대해 사기미수와 공무원자격사칭 혐의를 인정하고 징역 2년을 선고했다.
당시 피고인은 서울고등검찰청 검사 명의의 가짜 신분증과 서류를 제시하며 피해자에게 현금을 건네받으려 했으나 피해자의 신고로 현장에서 검거됐다.
보이스피싱 범죄에서는 피해자가 실제로 돈을 전달했는지 여부에 따라 사기 기수와 미수가 구분된다. 법원은 기망으로 인해 재물이 범인의 지배 아래 넘어가 자유롭게 처분할 수 있는 상태가 되었는지를 기준으로 기수 여부를 판단하고 있다.
피해자를 특정 장소에 머물게 하는 이른바 ‘셀프 감금’도 쟁점이 될 수 있다. 대법원은 감금죄에 대해 “특정 장소에서 나가는 것을 불가능하게 하거나 현저히 곤란하게 만드는 경우 성립하며 그 장해는 물리적 장해뿐 아니라 심리·무형적 장해로도 가능하다”고 판시했다.
따라서 “외부와 연락하면 구속된다”거나 “지시를 따르지 않으면 불이익이 있다”는 식으로 피해자의 행동을 사실상 통제했다면 감금죄가 문제될 수 있다는 설명이다.
반대로 피해자가 자유롭게 이동하거나 연락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면 감금까지는 인정되지 않고 사기나 강요 등 다른 범죄 중심으로 판단될 가능성도 있다.
한편 경찰은 최근 보이스피싱 범죄가 단순 금전 요구를 넘어 피해자를 장기간 통제하는 방식으로 진화하고 있다고 밝혔다.
경찰 관계자는 “검찰이나 금융기관은 숙박을 요구하거나 현금을 직접 전달하라고 지시하지 않는다”며 “이런 요구를 받았다면 보이스피싱을 의심하고 즉시 112에 신고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