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판 도중 피해자 사망”…DNA 재감정 어디까지 증거되나

  • 등록 2025.09.05 15:07: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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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원 “정밀 분석 결과 범행 증명”

 

성폭행 사건에서 한 차례 무죄가 선고됐던 피고인이 항소심에서 다시 진행된 DNA 감정 결과로 유죄 판단을 받았다. 재판부는 새로운 과학적 증거를 인정하며 징역형을 선고하고 피고인을 법정에서 구속했다.

 

5일 검찰에 따르면 A씨는 동호회 활동을 통해 알게 된 여성 B씨의 집에서 술을 마신 뒤 성폭행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사건 당시 현장에는 지인 C씨도 함께 있었지만 먼저 자리를 떠났고, 이후 집에는 A씨와 피해자만 남게 된 것으로 조사됐다. 수사 과정에서 검찰은 이때 범행이 이뤄진 것으로 보고 A씨를 기소했다.

 

A씨는 사건 다음 날 피해자의 동의 없이 다시 피해자의 주거지를 찾아간 사실도 확인됐다.

 

피해자 B씨는 사건 직후 경찰에 신고해 수사가 시작됐지만 재판이 진행되던 중 지병으로 숨졌다. 이 때문에 이후 재판에서는 피해자가 법정에서 직접 진술할 수 없는 상황이 됐다.

 

1심 재판부는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의 초기 감정 결과를 토대로 무죄를 선고했다. 피해자의 속옷에서 피고인의 정액 반응이 확인되지 않았다는 점이 주요 판단 근거였다.

 

그러나 항소심에서 검찰이 대검찰청 과학수사부에 재감정을 의뢰하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정밀 분석 결과 피해자의 속옷에서 A씨의 상염색체 STR DNA가 검출됐고 정액 반응도 추가로 확인됐다.

 

항소심 재판부는 이를 새로운 증거로 인정했다. 재판부는 “재감정 결과와 사건 경위 등을 종합하면 피고인의 범행이 합리적 의심 없이 증명된다”고 판단하며 A씨에게 징역 2년을 선고하고 법정구속했다.

 

이번 사건에서는 DNA 감정 결과의 증명력이 핵심 쟁점으로 떠올랐다. 법원은 과학적 증거의 신뢰성을 판단할 때 검사 방법의 적정성, 시료 채취·보관·분석 과정에서 동일성이 유지됐는지 여부, 오염이나 인위적 조작 가능성 등을 종합적으로 검토한다.

 

법리에 따르면 과학적 감정 결과가 사실 인정에 강한 증명력을 갖기 위해서는 감정인이 전문적 지식과 경험을 갖추고 공인된 표준 검사 기법을 사용했는지 여부가 확인돼야 한다.

 

또 시료 채취와 보관, 분석 과정에서 동일성이 유지됐는지와 각 단계의 인수·인계 기록이 정확히 남아 있는지도 중요한 판단 요소로 제시된다.

 

과학적 증거는 오류 가능성이 극히 낮고 전제가 충분히 입증된 경우 강한 증명력을 가질 수 있다. 특별한 사정 없이 이를 배척할 경우 자유심증주의의 한계를 벗어날 수 있다는 법리도 제시돼 왔다.

 

특히 이 사건처럼 1차 감정과 재감정 결과가 다른 경우 법정에서는 검사 방법의 차이, 시료의 혼합이나 열화 가능성, 분석 과정에서의 오염 여부, 시료 인수·인계 기록 등 이른바 ‘체인 오브 커스터디’ 유지 여부가 집중적으로 검토된다.

 

또 다른 쟁점은 피해자가 사망한 상황에서 수사 단계 진술의 증거능력이다. 피해자가 법정에 출석하지 못하면 피고인 측이 반대신문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형사소송법 제314조는 “공판준비 또는 공판기일에 진술해야 할 사람이 사망·질병 등 사유로 진술할 수 없는 경우 그 진술이 특히 신빙할 수 있는 상태에서 이뤄졌음이 증명될 때에만 증거로 사용할 수 있다”고 규정한다.

 

헌법재판소도 성폭력 사건에서 피해자 진술이 사실상 유일한 직접증거인 경우 반대신문 기회가 없는 서면 진술을 증거로 사용할 때에는 특히 신중한 판단이 필요하다고 밝힌 바 있다(헌재 2012헌바320).

 

법조계에서는 피해자가 사망한 성범죄 사건의 경우 객관적 증거의 중요성이 더욱 커진다고 설명한다. 피해자의 직접 진술이 불가능한 상황에서는 DNA와 같은 과학수사 결과가 사건 판단의 핵심 근거로 작용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법무법인 예문정 정재민 변호사는 “피해자가 사망해 직접 진술이 어려운 사건에서는 DNA 등 과학적 증거의 역할이 커질 수 있다”며 “다만 감정 과정의 신뢰성과 시료 관리 절차가 적정하게 이뤄졌는지 여부가 함께 검토된다”고 설명했다.

 

이어 “특히 1차 감정과 재감정 결과가 다른 경우에는 검사 방법의 차이와 시료 보관·분석 과정에서 오염 가능성이 있었는지 이른바 체인 오브 커스터디가 제대로 유지됐는지가 재판에서 중요한 판단 기준이 된다”고 덧붙였다.

이설아 기자 seolla@sisalaw.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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