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생 유인 시도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경찰이 이를 초기에 ‘혐의 없음’으로 종결 처리했다가 뒤늦게 수사를 재개한 사실이 드러나면서 부실 대응 논란이 제기되고 있다.
서울 서대문구의 한 초등학교 주변에서 초등학생들에게 접근해 차량 쪽으로 유인하려 한 20대 남성들이 경찰에 붙잡혔다. 경찰은 사건 초기 범죄 혐의를 특정하기 어렵다며 종결 처리했지만 이후 추가 신고와 폐쇄회로(CC)TV 재확인을 통해 범행 정황이 드러나면서 수사를 다시 진행했다.
서울 서대문경찰서는 5일 브리핑을 통해 사건 당시 촬영된 CCTV 영상을 공개했다.
경찰 조사에 따르면 자영업자 A씨와 대학생 B씨 등 20대 남성 3명은 지난달 28일 오후 3시 30분께 차량을 이용해 서대문구 일대를 이동하며 초등학생들에게 말을 건넨 것으로 확인됐다. 이들은 식당에서 식사를 마친 뒤 귀가하던 중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파악됐다.
일당은 같은 날 오후 3시 31분부터 약 5분 동안 초등학교 인근 도로와 공영주차장 일대에서 초등학교 저학년 남학생 4명에게 접근했다.
피의자들은 차량 창문을 내린 상태에서 “귀엽다. 집에 데려다줄게”라고 말하며 아이들을 차량 쪽으로 유도하려 했다. 그러나 학생들이 놀라 달아나거나 자리를 피하면서 실제 납치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당시 피의자들은 차에서 내리지 않은 채 차창을 통해 말을 건넨 것으로 조사됐다.
피의자들은 경찰 조사에서 “술자리 다음 날 장난삼아 말을 걸었다”며 “아이들이 놀라는 반응을 보고 재미있을 것 같았다”는 취지로 진술했다.
하지만 수사기관은 이를 단순한 장난으로 보기 어렵다고 판단하고 있다. 짧은 시간 동안 같은 방식으로 세 차례 반복해 초등학생들에게 접근했기 때문이다. 경찰은 이 가운데 두 명에게 미성년자 유인 미수 혐의를 적용해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이 사건의 핵심 쟁점은 이러한 행위가 형법상 미성년자 유인죄 또는 유인미수에 해당하는지 여부다. 형법 제287조는 미성년자를 기망 또는 유혹을 통해 현재의 보호 상태에서 이탈하게 해 자기 또는 제3자의 사실적 지배 아래로 옮기는 행위를 처벌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아울러 형법 제294조는 약취·유인 범죄의 미수범도 처벌하도록 하고 있다.
대법원도 ‘유인’의 개념을 폭넓게 해석해 왔다. 대법원은 “미성년자유인죄라 함은 기망 또는 유혹을 수단으로 하여 미성년자를 꾀어 현재의 보호 상태로부터 이탈하게 하고 자기 또는 제3자의 사실적 지배 하로 옮기는 행위를 말한다”고 판시한 바 있다(대법원 선고 95도2980).
하급심 판례에서도 유사한 판단이 이어졌다. 2023년 인천지방법원 부천지원은 초등학생에게 접근해 자신을 학교 교사라고 속이고 돈을 건넨 뒤 학교 밖으로 데려가려 한 사건에서 미성년자유인미수죄를 인정했다.
재판부는 “미성년자를 자기 지배 아래로 옮기기 위한 기망이나 유혹의 수단을 개시한 시점에서 이미 범죄의 실행이 시작된 것으로 볼 수 있다”고 판단했다.
이 같은 판례 기준을 적용하면 차량 안에서 “집에 데려다주겠다”고 말하며 접근한 행위 역시 미성년자를 따라오게 하려는 유혹 행위로 평가될 여지가 있다. 특히 짧은 시간 동안 동일한 방식의 접근이 반복된 점은 범행 의도를 판단하는 중요한 정황으로 고려될 수 있다.
다만 피의자들이 끝까지 차량에서 내리지 않았고 “차에 타라”거나 “어디로 가자”는 식의 구체적인 이동 요구가 확인되지 않았다는 점은 법적 판단에서 중요한 쟁점이 될 수 있다.
미성년자유인죄가 성립하려면 미성년자를 보호 관계에서 이탈시켜 자기 또는 제3자의 사실적 지배 아래로 옮기려는 고의가 인정돼야 하기 때문이다.
또 다른 쟁점은 차량에 함께 타고 있던 동승자의 형사 책임이다. 공동정범이 인정되려면 범행에 대한 공동가공의사와 기능적 행위지배가 필요하다. 단순히 현장에 함께 있었거나 이를 제지하지 않았다는 사정만으로는 공범이 성립하기 어렵다는 것이 일반적인 법리다.
그러나 경찰은 반복적 접근이라는 점에서 범행 위험성이 크다고 보고 있다. 차량 뒷좌석에 탑승했던 C씨의 경우 친구들의 행동을 제지하려 한 정황이 확인돼 불구속 상태로 수사가 진행되고 있다.
범행에 사용된 차량은 A씨의 부친 명의로 등록된 것으로 확인됐다. 경찰은 압수수색을 통해 피의자들의 휴대전화와 태블릿PC 등을 확보했으며 현재 디지털 포렌식을 진행 중이다.
하지만 경찰은 초기 조사 단계에서 피해 학생들이 상황을 정확히 기억하지 못했고, 차량 종류도 특정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사건을 ‘혐의 없음’으로 종결 처리한 것으로 전해졌다.
특히 최초 신고 과정에서 범행 차량이 ‘흰색 스타렉스’로 알려지면서 수사에 혼선이 발생했다. 당시 실제 차량은 회색 쏘렌토였다.
또 CCTV에는 해당 차량이 약 4초간 정차한 모습이 찍혀 있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경찰은 영상에서 아이들이 달아나는 장면이 명확히 확인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범죄 가능성을 낮게 판단했다.
그러나 이후 추가 신고가 이어지면서 학생들이 차량을 피해 도망가는 장면이 확인됐고, 경찰은 수사를 다시 진행해 피의자들을 검거했다.
이대우 서대문경찰서 형사과장은 “초기 CCTV 분석 과정에서 범행 정황을 명확히 확인하지 못해 사건성을 입증하기 어려웠다”며 “그 부분에 대해서는 아쉬움이 있다”고 말했다.
한편 피의자 2명은 이날 오전 서울서부지방법원에서 열린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에 출석했다. 이들은 취재진이 “혐의를 인정하느냐”고 묻자 별다른 답변을 하지 않았다. 법원의 구속 여부는 이날 중 결정될 예정이다.
한편 경찰은 “미성년자 유인 범죄는 실제로 아이를 차량에 태우지 않았더라도 기망이나 유혹 행위가 개시된 경우 미수범이 성립할 수 있다”며 “추가 범행 가능성 등을 포함해 수사를 계속할 계획”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