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12월 10일 오후 2시 20분쯤 서울 송파구 잠실동의 한 빌라에서 끔찍한 사건이 벌어졌다. “택배입니다”라고 말하며 초인종을 누른 남성은 현관문을 연 어머니 B씨(49)를 향해 갑자기 흉기를 휘둘렀다.
이를 막기 위해 달려든 아들 C군(13)도 공격을 받아 목 부위에 약 12㎝에 달하는 깊은 자상을 입었다.
당시 남편 D씨는 아내와 통화 중이었다. 수화기 너머로 비명과 충돌 소리를 들은 그는 곧바로 112에 신고했다. 그는 “집에 무슨 일이 있는 것 같다. 아내의 비명이 들렸다. 빨리 와달라”고 말했다. 경찰이 현장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모자가 피를 흘린 채 쓰러져 있었다.
B씨는 즉시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약 1시간 뒤 끝내 숨졌다. 중상을 입은 아들은 응급수술을 받은 뒤 일주일 만에 의식을 되찾았다. 현장에 달려온 남편과 딸 A씨는 울부짖으며 “그놈 짓이다”라고 외쳤다.
형사들이 “누구냐”고 묻자 두 사람은 동시에 이씨(1996년생)를 범인으로 지목했다. 경찰은 곧바로 주변 수색에 나섰고 사건 발생 약 30분 만에 바로 옆 빌라의 빈집 장롱 속에 숨어 있던 이씨를 붙잡았다.
수사 결과 이 사건의 발단은 딸 A씨와 피의자 이씨의 관계에서 비롯된 것으로 드러났다. 두 사람의 인연은 같은 해 여름 온라인 게임을 통해 시작됐다. 처음에는 단순히 게임을 함께하는 사이였다.
그러나 A씨가 가정 문제로 집을 떠나면서 관계는 급격히 가까워졌다. 이씨는 “방세는 내가 낼 테니 그냥 와서 지내라”며 A씨를 천안의 원룸으로 불렀고 두 사람은 10월부터 함께 생활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관계는 오래 지속되지 않았다. 12월 초 A씨가 가족의 설득을 받아 “집으로 돌아가겠다”고 말하면서 갈등이 격화됐다. 조사에 따르면 이씨는 A씨를 폭행하고 성폭행한 뒤 그 장면을 휴대전화로 촬영한 것으로 드러났다.
다음 날에도 그는 “말을 안 들으면 동영상을 퍼뜨리고 죽여버리겠다”며 협박하며 A씨를 부모가 있는 경북 청도까지 데려갔다.
결국 A씨는 피해 사실을 경찰에 알렸고 신변 보호 대상자로 지정됐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비극을 막지는 못했다. 조사 과정에서 이씨는 “성폭행도, 촬영도 한 적 없다”며 혐의를 부인했다. 경찰이 휴대전화 제출을 요구하자 그는 이를 제출했고 긴급체포 대신 입건 조치만 된 채 귀가했다.
신변 보호 대상자 지정은 수사 과정에서 피해자에게 추가적인 위해가 발생할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될 경우 경찰이 실시하는 보호 조치다.
관련 규정에 따르면 수사기관은 범행의 수법과 동기, 피해자와 가해자의 관계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피해자의 생명이나 신체에 위해가 발생할 우려가 있다고 판단되면 피해자의 신청이나 경찰의 직권으로 보호 조치를 할 수 있다.
통상적으로는 피해자가 보호를 요청하면 경찰이 위험성 평가를 거쳐 필요성을 판단한다. 긴급 상황에서는 심사 절차 이전이라도 즉시 보호 조치가 가능하다.
보호 조치의 유형도 다양하다. 피해자 주거지 주변 순찰 강화, 임시숙소 제공, 경찰 동행, 비상연락 체계 구축, 스마트워치 지급 등이 포함된다. 그러나 이러한 조치가 이루어졌다고 해서 모든 보복 범죄를 완전히 차단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실제 사건에서도 A씨는 경찰에 피해 사실을 신고한 뒤 신변 보호 대상자로 지정됐지만 가해자가 불법적으로 주소를 알아내면서 결국 비극적인 범행이 발생했다.
이씨는 풀려난 직후 보복 범행을 준비한 것으로 드러났다. 그는 변호사 상담 이후 피해자의 주민등록 주소를 조회했지만 확인되지 않자 흥신소에 50만 원을 건네며 “현 주소를 알아봐 달라”고 의뢰했다.
피해자의 주소는 약 40분 만에 그의 손에 전달됐다.
수사 결과 이 정보는 불법적인 경로로 유출된 것으로 확인됐다. 이씨가 지급한 50만 원은 흥신소 직원들을 거쳐 여러 차례 하청 형태로 전달됐고 결국 수원시청 계약직 공무원 G씨가 주민등록 정보를 불법 조회해 단돈 2만 원에 넘긴 사실이 드러났다.
주소를 확보한 이씨는 곧바로 범행 준비에 들어갔다. 그는 렌터카를 이용해 범행 장소를 사전에 살폈다. 전기충격기와 밧줄, 망치, 마대 등 범행 도구를 구입했고 화재경보기를 일부러 울려 건물에서 사람들이 어떻게 움직이는지도 확인했다.
또한 주민을 따라 공동현관 비밀번호를 파악했다. 이후 택배 기사로 가장해 초인종을 누른 뒤 범행을 저질렀다.
이 사건은 피해자의 신고와 진술로 수사가 시작된 직후 가해자가 불법적으로 취득한 피해자 가족의 주소지를 이용해 침입한 뒤 모친을 살해하고 미성년 자녀까지 살해하려다 미수에 그친 범죄라는 점에서 사회에 큰 충격을 남겼다.
법원은 사건의 구조와 범행 경과를 종합해 특정범죄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상 보복살인, 살인미수, 살인예비, 강간상해, 카메라 등을 이용한 촬영, 감금, 개인정보보호법 위반, 특수주거침입 등 다수 혐의를 모두 유죄로 인정했다.
재판의 쟁점은 이 범행이 단순 살인이 아니라 ‘보복 목적’의 범죄인지 여부였다. 법원은 피해자의 신고로 수사가 시작된 직후 피고인이 주소를 추적하고 흥신소에 의뢰해 거주지를 확보한 뒤 범행 도구를 준비하고 잠복한 끝에 침입·살해에 이른 일련의 과정을 근거로 보복 목적을 인정했다.
재판부는 이러한 정황이 수사나 재판 과정에서의 진술이나 고소 등에 대한 보복 범행으로 판단할 때 고려되는 대표적인 객관적 사정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또 다른 쟁점은 강간상해 혐의의 성립 여부였다. 피고인은 폭행과 성관계 사이 인과관계가 없다고 주장했지만 법원은 강간상해죄에서 말하는 ‘상해’는 강간의 기회에 발생하거나 시간적·장소적으로 밀접하게 연결된 폭행으로 발생한 경우도 포함된다는 법리를 적용해 유죄로 판단했다.
범행 이전의 준비 행위도 중요한 판단 요소로 평가됐다. 법원은 흉기와 전기충격기, 밧줄 등을 준비하고 현장을 사전에 답사하며 공동현관 비밀번호를 파악한 행위가 단순한 위협이나 분노 수준을 넘어 살해 목적을 위한 준비 행위에 해당한다고 판단해 살인예비 혐의 역시 인정했다.
검찰은 사건의 잔혹성과 계획성을 강조하며 사형을 구형했다. 그러나 1심 재판부는 사형 대신 무기징역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범행 방법이 잔혹하고 피해 회복이 불가능할 정도로 중대한 범죄라는 점을 인정하면서도 사형은 극히 예외적인 경우에만 허용되는 형벌이라는 대법원 기준을 고려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법원은 피고인을 사회로부터 장기간 격리할 필요성이 크다고 판단해 무기징역을 선택했다. 동시에 위치추적 전자장치 20년 부착, 성폭력 치료 프로그램 80시간 이수, 아동·청소년 관련 기관 취업 제한 10년을 명령했다.
선고 직후 유족들은 “결과가 참담하다”며 법정에서 강하게 항의했다. 검찰과 유족은 형량이 지나치게 가볍다며 항소했고 피고인 역시 형이 무겁다며 항소했다.
그러나 항소심 재판부는 “극악무도한 범죄로 사회로부터 영구히 격리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하면서도 “사형은 최후의 형벌이며 무기징역 상태에서의 가석방 심사를 통해 사실상 영구 격리가 가능하다”고 설명하며 원심 판단을 유지했다.
한편 주소 유출에 가담한 흥신소 관련자 5명은 징역 1년에서 4년 사이의 형을 선고받았다. 주민등록 정보를 불법 조회한 공무원 G씨는 2023년 대법원에서 징역 5년이 확정됐다. 가해자 이씨 역시 같은 해 4월 대법원에서 무기징역이 확정되면서 현재까지 수감 생활을 이어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