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무원이 2만 원에 넘긴 주소, 신변 보호 여성 가족 살인으로 이어져

  • 등록 2025.09.05 17:19: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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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이 폭행 신고하자 보복 결심
흥신소 통해 알아낸 주소 찾아가

“격리 필요” 무기징역으로 수감
주소 넘긴 공무원 징역 5년 확정

 

2021년 12월 10일 오후 2시 20분쯤, 서울 송파구 잠실동의 한 빌라는 순식간에 참극의 현장이 됐다. 초인종을 누르며 “택배입니다”라고 외친 남성은 현관문을 연 어머니 B 씨(49)에게 다짜고짜 흉기를 휘둘렀고, 곁에서 엄마를 지키려 달려든 아들 C 군(13)은 목 부위에 깊이가 12cm나 되는 자상을 입었다.


아내와 통화 중이던 남편 D 씨는 수화기 너머로 아내의 비명과 둔탁한 소리를 듣고 곧장 “집에 무슨 일이 있는 것 같다. 아내의 비명이 들렸다. 빨리 와달라”며 112에 신고했다. 현장에 도착한 형사들이 본 것은 피를 흘리며 쓰러진 모자의 모습이었다.

 

B 씨는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한 시간 만에 숨졌고, 아들은 응급 수술 끝에 일주일 뒤 가까스로 의식을 회복했다. 곧장 달려온 남편과 딸 A 씨(2000년생)는 울부짖으며 “그놈 짓이다”라고 외쳤다. “누구냐”는 형사들의 질문에 남편과 딸은 한목소리로 “이 씨(1996년생)”를 지목했다. 경찰은 인근을 수색했고, 사건 발생 30분 만에 바로 옆 빌라 빈집 장롱 속에 숨어있던 범인을 체포했다.


A 씨와 이 씨의 인연은 2021년 여름 온라인 게임에서 시작됐다. 단순히 오빠·동생으로 지내던 두 사람의 관계는 A 씨가 가정불화로 집을 나서면서 달라졌다. 이 씨는 “방세는 내가 낼 테니 그냥 와서 지내라”며 A 씨를 천안 원룸으로 불러들였고, 10월부터 사실상 동거가 이어졌다.

 

그러나 12월 초, A 씨가 가족 설득에 따라 “집으로 돌아가겠다”고 말하자 상황은 급변했다. 이 씨는 A 씨를 폭행하고 성폭행했으며, 그 장면을 휴대폰으로 촬영했다. 다음 날에도 그는 “말을 안 들으면 동영상을 퍼뜨리고 죽여버리겠다. 여자친구인 척하라”고 협박하며 A 씨를 부모가 사는 경북 청도까지 데려갔다.

 

피해 사실을 알린 A 씨는 경찰의 신변 보호 대상자로 지정됐지만, 결과적으로 참극을 막지 못했다. 조사 과정에서 이 씨는 “성폭행도, 촬영도 한 적 없다”며 완강히 부인했다. 경찰이 휴대폰 제출을 요구하자 그는 순순히 응했고, 이를 근거로 경찰은 “긴급체포까지 할 사안은 아니다”라며 입건만 한 뒤 귀가시켰다.


이 씨는 풀려난 직후 곧바로 보복을 준비했다. 변호사 상담을 받은 뒤 피해자의 주민등록 주소지를 검색했지만 허탕을 치자, 흥신소에 50만 원을 건네고 “현 주소를 알아봐 달라”고 의뢰했다. 주소는 단 40분 만에 그의 손에 들어왔다.


수사 결과는 충격적이었다. 이 씨가 건넨 50만 원은 흥신소 직원을 거쳐 차례로 하청됐고, 최종적으로 수원시청 계약직 공무원 G 씨가 주민등록 정보를 불법 조회해 단돈 2만 원에 넘긴 사실이 드러났다.

 

주소지를 확보한 이 씨는 렌터카를 몰고 현장을 답사했다. 전기충격기·밧줄·망치·마대까지 구입하고, 화재경보기를 일부러 작동시켜 뛰쳐나오는 사람을 확인했다. 공동현관 비밀번호는 주민을 따라가 곁눈으로 알아냈다. 그리고 범행 당일, 택배 기사로 위장해 초인종을 누르고 비극이 발생했다.

 


검찰은 보복살인·강간상해·살인예비·개인정보보호법 위반 등 7개 혐의로 이 씨를 기소하며 사형을 구형했다. “피고인에게 참작할 점은 전혀 없고, 유족도 강력히 처벌을 원한다”며 “영원히 사회에서 배제되는 형벌도 결코 가혹하지 않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2022년 6월 1심 재판부는 무기징역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범행 방법이 잔혹하고 유가족의 고통이 심각하다”면서도 “벌금형을 초과하는 전과가 없고, 범행을 인정·반성하고 있다”며 사형 대신 무기징역을 택했다. 위치 추적 전자장치 20년 부착, 성폭력 치료 프로그램 80시간 이수, 아동·청소년 관련 기관 취업 제한 10년도 함께 명령했다.


유족들은 “결과가 참담하다”며 법정에서 격렬히 항의했다. 검찰과 유족은 형이 가볍다며 항소했고, 피고인 측도 “무겁다”며 항소했다. 2심 재판부 역시 “극악무도한 범죄로 사회로부터 영구히 격리할 필요가 있다”면서도 “사형은 최후의 형벌로, 무기징역의 가석방 심사를 통해 사실상 영구 격리가 가능하다”며 무기징역을 유지했다.

 

흥신소 관련자 5명은 징역 1~4년을, 공무원 G 씨는 2023년 대법원에서 징역 5년을 확정받았으며 이 씨는 2023년 4월 27일 대법원 2부(주심 조재연 대법관)에 의해 무기징역을 확정받고 현재 복역 중이다.

 

 

최희원 기자 chw1641@sisalaw.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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