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차·LG 배터리 美 불법체류자 취급…한국인 300여 명 구금

  • 등록 2025.09.06 14:4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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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계 “비자 막아놓고 불법체류자 단속"

 

현대자동차그룹과 LG에너지솔루션이 미국 조지아주에서 추진 중인 배터리 합작 공장 건설 현장에서 대규모 이민 단속이 이뤄지면서 한국인 근로자 수백 명이 구금되는 사태가 발생했다.

 

한국 기업의 대미 투자 현장에서 이민 단속으로 대규모 인력이 체포된 것은 이례적인 일로 재계에서는 향후 반도체·배터리 등 첨단 산업 투자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업계에 따르면 미국 국토안보수사국(HSI)은 지난 5일(현지시간) 공장 건설 현장을 단속해 총 475명을 체포했다. 이 가운데 상당수가 한국인으로 약 300명 안팎이 구금된 것으로 전해졌다.

 

체포된 인원 중 일부는 비자 면제 프로그램 ESTA로 미국에 입국한 뒤 취업이 허용되지 않은 상태에서 근무했거나 체류 기간을 넘긴 것으로 알려졌다. ESTA는 관광·출장 등 단기 방문을 위한 제도로 원칙적으로 현지 취업은 허용되지 않는다.

 

이번 단속과 관련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그들은 불법 체류자였고 미국 이민세관단속국(ICE)이 본분을 다했을 뿐”이라며 단속이 정당한 조치라고 강조했다.

 

그러나 국내 재계에서는 불만의 목소리가 나온다. 미국 정부가 대규모 투자를 유치하면서도 현장 인력 확보를 어렵게 만드는 정책 환경을 조성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한 업계 관계자는 “숙련 기술 인력을 H-1B 취업비자로 파견하려면 수개월이 걸린다”며 “공장 건설이나 설비 설치 같은 현장 작업은 단기간에 인력이 필요해 단기 체류 비자나 ESTA에 의존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고 말했다.

 

현재 미국의 대표적인 전문직 취업비자인 H-1B 비자는 연간 발급 규모가 약 8만 5000명으로 제한돼 있다. 기업들이 필요로 하는 현장 기술 인력을 모두 수용하기에는 현실적인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 꾸준히 제기돼 왔다.

 

건설업계에서도 책임 문제에 대한 부담을 호소하고 있다. 한 업계 관계자는 “원청 기업이 협력사에 취업비자 활용을 권고하더라도 세부 인력 관리까지 직접 통제하기는 어렵다”며 “원청에 모든 책임을 묻는 구조가 되면 해외 공사 자체가 위축될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이번 단속 과정에서는 현대엔지니어링 협력업체 소속 근로자 약 170명이 체포된 것으로 전해졌다. 다만 이들이 모두 한국 국적자는 아닌 것으로 알려졌다.

 

재계에서는 이번 사건이 배터리 산업뿐 아니라 반도체, 자동차, 조선 등 한국 기업의 대미 투자 전반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일부에서는 미국 정부가 자국 건설업체 참여 확대를 유도하기 위해 단속을 강화한 것 아니냐는 분석도 제기된다. 한국 기업들은 기술 유출 가능성과 높은 인건비 부담 등을 이유로 현지 업체 활용에 신중한 입장을 보이고 있다.

 

정부도 대응에 나섰다. 대한민국 외교부는 사건 발생 직후 현지 공관을 중심으로 대응 체계를 가동했다. 조기중 주미국대사관 총영사와 주애틀랜타 총영사를 현장에 보내 상황을 파악하고 있으며 구금된 한국인에 대한 영사 조력도 진행 중이다.

 

한편 재계와 경제단체들은 전문 인력 비자 제도 개선 필요성도 제기하고 있다. 한국무역협회 등은 한국인 기술 인력을 위한 별도의 전문직 취업비자 신설을 미국 정부에 요청하고 있다. 이른바 ‘E-4 비자’는 한국인을 위한 별도의 전문직 취업비자를 만들자는 정책 제안이다.

 

현재 미국은 자유무역협정(FTA)을 체결한 일부 국가에 대해 별도의 취업비자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예를 들어 캐나다와 멕시코에는 TN 비자, 싱가포르와 칠레에는 H-1B1 비자, 호주에는 E-3 비자가 적용된다. 이들 비자는 일반 취업비자보다 절차가 간단하고 별도의 발급 쿼터가 마련돼 있다.

 

재계는 한국 기업의 대규모 대미 투자와 기술 협력을 고려할 때 한국인 전문 인력에 대해서도 유사한 취업비자 제도를 도입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한 재계 관계자는 “한국 기업들이 미국에 대규모 투자를 하고 있지만 공장 건설이나 설비 설치에 필요한 기술 인력을 제때 투입하기 쉽지 않은 상황”이라며 “투자 확대와 산업 협력을 고려하면 한국인 기술 인력을 위한 별도 전문직 비자 제도 도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조정우 기자 QNLKDFNA@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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