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해자가 깊이 잠든 상태이거나 술이나 약물 등의 영향으로 정상적인 판단이나 저항이 어려운 상태에서 성관계가 이뤄졌다면 형법상 준강간죄가 적용될 수 있다.
8일 법조계에 따르면 형법 제299조는 사람의 심신상실 또는 항거불능 상태를 이용해 간음한 경우 강간죄와 동일한 수준으로 처벌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여기서 말하는 심신상실이나 항거불능은 단순히 의식을 완전히 잃은 상태뿐 아니라 술이나 약물로 인해 정상적인 판단 능력이나 대응 능력이 현저히 떨어진 경우도 포함될 수 있다.
실제 판례에서도 술에 취해 정상적인 의사결정이 어려운 상태에 놓인 피해자를 상대로 한 성관계를 준강간으로 인정한 사례가 반복적으로 확인된다.
대법원은 “피해자가 깊은 잠에 빠져 있거나 술 또는 약물로 일시적으로 의식을 잃은 상태뿐 아니라 정상적인 판단능력과 대응능력을 행사할 수 없는 상태에 있었다면 준강간죄에서의 심신상실 또는 항거불능 상태에 해당할 수 있다”고 판시한 바 있다(대법원 선고 2018도9781).
또 가해자가 둘 이상일 경우 처벌 수위는 더 높아질 수 있다. 두 명 이상이 공모해 범행을 실행한 것으로 인정되면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상 특수준강간이 적용된다.
이러한 공모 관계가 인정된 사례도 있다. 2021년 수원지방법원 성남지원은 특수준강간 사건에서 “피고인들이 술에 취해 항거불능 상태에 있는 피해자를 이용해 순차적으로 간음했다”고 판단하며 피고인들에게 각각 징역 장기 6년, 단기 4년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당시 피해자의 상태에 대해 “상당한 음주로 정상적인 판단능력과 저항 능력이 현저히 저하된 상태였다”고 판단했다. 또 가해자들이 서로 연락을 주고받으며 범행 상황을 공유한 정황 등을 근거로 묵시적인 공모 관계가 인정된다고 봤다.
수사 과정에서 확보되는 카카오톡 메시지나 통화 녹음 등 디지털 대화 기록의 증거능력도 중요한 쟁점이 된다.
해당 사건에서도 최초 피해자는 남자친구가 범행에 가담했을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해 경찰에 “B씨는 잘못이 없다”고 진술한 것으로 전해졌다.
그러나 경찰은 B씨와 C씨가 주고받은 카카오톡 메시지를 확인한 뒤 휴대전화 포렌식을 진행했고, 두 사람이 “A씨가 마실 술에 약을 타자”는 취지로 대화를 나눈 통화 녹음을 확보했다고 밝혔다.
법조계에 따르면 이러한 대화 기록은 수사기관이 압수수색 영장 등 적법한 절차에 따라 확보하고 디지털 포렌식 과정에서 무결성이 유지됐다면 재판에서 주요 증거로 활용될 가능성이 높다.
다만 대화가 불법 감청 등 위법한 방식으로 확보됐다면 증거능력이 인정되지 않을 수 있다. 또 압수수색 영장의 범위, 포렌식 과정의 절차적 적법성, 데이터 변조 여부 등도 재판에서 주요 쟁점이 될 수 있다.
법무법인 안팍 안지성 변호사는 “술이나 약물로 피해자가 정상적인 대응을 하기 어려운 상태에서 성관계가 이뤄졌다면 준강간이 성립할 수 있다”며 “두 명 이상이 공모해 범행을 저지른 경우 특수준강간이 적용돼 처벌 수위가 높아질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이 같은 사건에서는 휴대전화 포렌식으로 확보된 메신저 대화나 통화 녹음이 공모 관계를 입증하는 핵심 증거가 되는 경우가 많다”며 “피해자는 사건 직후 의료기관 진료나 증거 보존 절차를 진행하고, 가능한 한 빠르게 수사기관이나 성폭력 피해 지원기관에 도움을 요청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