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춘재 연쇄살인’ 누명 쓴 윤동일씨…재심서 검찰 '무죄' 구형

  • 등록 2025.09.09 15:3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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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 수사 과정 위법 확인…

 

형사재판에서 검찰이 피고인의 유죄가 아닌 무죄를 구형하는 경우는 이례적이지만, 제도적으로는 가능한 절차다. 최근 재심 사건에서 검찰이 과거 수사의 문제를 인정하고 무죄 의견을 밝히면서 형사사법 절차의 오류를 바로잡는 움직임이 이어지고 있다.

 

수원지법 형사15부(정윤섭 부장판사)는 9일 열린 재심 공판에서 윤씨 사건에 대한 변론을 진행했다. 이날 검찰은 ‘이춘재 연쇄살인 사건’ 9차 사건의 범인으로 지목돼 억울한 옥살이를 했던 고(故) 윤동일씨 재심에서 검찰이 무죄를 구형했다.

 

검찰은 “과거 수사 과정에서 불법 행위가 있었던 사실이 확인됐다”며 “피고인의 자백 역시 임의성이 인정되기 어렵고 피해자 진술도 적법한 절차에 따라 수집됐다고 보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이어 “오랜 세월 고통을 겪은 피고인과 유족에게 진심으로 사죄드린다”고 밝혔다.

 

검찰이 공판 과정에서 무죄 의견을 밝히는 사례는 흔하지 않다. 그러나 제도적으로는 가능한 절차다.

 

형사소송법에 따르면 검사는 증거조사가 끝난 뒤 사실관계와 법률 적용에 관한 의견을 진술해야 한다. 이 단계에서 형벌에 관한 의견을 밝히는 절차를 통상 ‘구형’이라고 한다.

 

이 의견에는 유죄뿐 아니라 무죄 의견도 포함될 수 있다는 것이 판례와 실무의 입장이다. 대법원도 검사의 최종 의견 진술에는 사실관계와 법률 적용에 관한 판단이 포함된다고 판시한 바 있다(대법원 선고 2001도5225).

 

다만 검사의 구형이나 의견은 법원을 구속하지 않는다. 형사소송법과 관련 판례에 따르면 법원은 검사의 의견과 관계없이 독자적인 판단에 따라 유무죄와 형량을 결정할 수 있다.

 

이번 사건은 일반적인 공판 사건과 달리 재심 사건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검찰이 스스로 과거 수사와 공소 유지 과정의 문제를 인정하고 무죄 의견을 밝힌 사례라는 점에서 형사사법 절차의 오류를 바로잡는 과정이라는 분석이다.

 

형사소송법은 유죄가 확정된 사건이라도 일정한 사유가 있을 경우 재심을 청구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특히 유죄 판결을 받은 사람이 사망한 경우 배우자나 직계친족, 형제자매가 재심을 청구할 수 있다.

 

재심 개시 결정이 확정되면 법원은 다시 본안 심리를 진행하며, 사망을 이유로 공소기각을 하지 않고 심리를 계속할 수 있다. 이는 억울한 판결을 받은 당사자의 명예를 회복하기 위한 제도적 장치다. 이번 윤씨 사건 역시 이러한 절차에 따라 재심이 진행됐다.

 

윤씨는 1990년 11월 화성 연쇄살인 사건 9차 사건의 용의자로 지목돼 경찰에 강제 연행됐다. 이후 가족과 연락이 차단된 상태에서 장시간 조사를 받았고, 수사 과정에서 잠을 재우지 않거나 폭행을 하는 등 강압 수사가 있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이후 윤씨는 별도의 강제추행 사건으로 기소돼 재판에 넘겨졌고, 1991년 징역 2년 6개월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받았다. 이후 항소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아 판결은 그대로 확정됐다. 또 석방된 뒤 약 10개월 만에 암 진단을 받아 1997년 세상을 떠났다.

 

사건의 실체는 약 30년 뒤 드러났다. 2019년 화성 연쇄살인 사건의 진범이 이춘재로 밝혀진 것이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이 보관 중이던 9차 사건 피해자 속옷을 재감정한 결과 이춘재의 DNA가 검출됐다. 이춘재 역시 수사 과정에서 연쇄살인 범행을 자백했다.

 

이후 2022년 12월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는 당시 수사 과정에서 광범위한 인권 침해가 있었다는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위원회는 당시 연행과 구금 과정에서 위법 행위와 자백 강요가 있었다고 판단했다.

 

윤씨 측 변호인인 박준영 변호사는 최후변론에서 당시 수사와 재판 과정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박 변호사는 “사건이 오래돼 기억의 한계가 있었음에도 재판부가 꼼꼼히 증거조사를 진행해 준 점에 감사한다”며 “2019년 진범 이춘재가 확인되고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의 재감정을 통해 사실관계가 밝혀졌다”고 말했다.

 

공동 변호인인 김칠준 변호사도 검찰의 무죄 의견을 언급하며 “재심에서 검찰이 무죄 의견을 밝히는 것은 상당한 용기가 필요한 결정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어 “당시 수사 과정에서 불법 구금과 강압 수사가 있었는데도 이를 걸러내지 못한 점은 여전히 안타깝다”고 덧붙였다.

 

이번 사건은 한국 형사사법 역사에서 대표적인 오판 사례로 평가된다. 강압 수사와 허위 자백, 수사기관의 사건 은폐 의혹 등이 제기된 사건이라는 점에서 사법 시스템의 책임 문제도 제기되고 있다.

 

한편 윤씨 재심 선고는 오는 10월 30일 오후 2시 수원지법에서 내려질 예정이다.

박보라 기자 violet0218@sisalaw.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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