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위 “수사기관 통신이용자 정보, 법원 허가 절차 도입해야”

  • 등록 2025.09.10 16:44: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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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사기관 통신가입자 정보 영장 없이 확보

 

국가인권위원회가 수사기관이 통신사로부터 이용자 정보를 확보하는 과정에 법원 허가 절차를 도입해야 한다며 제도 개선을 국회에 권고했다.

 

10일 인권위에 따르면 현행 전기통신사업법은 수사기관이 이동통신사 등 전기통신사업자에게 요청할 경우 이용자의 성명, 주민등록번호, 주소, 전화번호, 아이디, 가입일과 해지일 등 가입자 정보를 제공받을 수 있도록 하고 있다. 별도의 영장이나 법원 심사 없이도 정보 제공이 가능한 구조다.

 

이 제도는 1978년 도입된 이후 현재까지 유지되고 있다. 국회에서는 2012년 이후 법원 허가 절차를 도입하는 방향의 법 개정안이 여러 차례 발의됐지만 아직까지 입법으로 이어지지 못했다.

 

전기통신사업법 제83조는 수사기관이 통신이용자 정보를 요청할 경우 요청 사유와 이용자와의 연관성, 필요한 정보 범위를 적은 정보제공요청서를 제출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긴급한 경우에는 먼저 구두나 전자 방식으로 요청한 뒤 사후에 서면을 제출할 수도 있다. 다만 해당 제도에는 법원의 사전 통제 장치가 없다.

 

헌법재판소도 이 제도를 강제처분이 아닌 임의수사로 보아 영장주의 적용 대상은 아니라고 판단한 바 있다. 그러나 이용자에게 정보 제공 사실을 통지하는 절차가 없다는 점은 적법절차 원칙에 위배된다며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린 바 있다(헌법재판소 2016헌마388).

 

현재 제도는 사후 관리 중심으로 운영된다. 전기통신사업자는 정보 제공 사실을 기록한 대장을 보관해야 하며 관련 자료를 갖춰 두어야 한다. 또 제공 현황을 연 2회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에게 보고하도록 규정돼 있다. 다만 이용자에게 정보 제공 사실을 통지해야 할 의무는 명확히 규정돼 있지 않다.

 

인권위는 이러한 제도가 개인정보 보호 측면에서 문제가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수사 과정에서 범죄와 직접 관련이 없는 사람들의 인적 정보까지 수집될 가능성이 있으며 정보 수집 범위와 목적이 지나치게 넓다는 것이다.

 

특히 인공지능과 빅데이터 기술이 수사에 활용되는 상황에서 통신이용자 정보가 다른 데이터와 결합될 경우 개인의 행동 패턴이나 사회적 관계망, 정치적 성향 등 민감한 정보까지 분석될 가능성이 있다고 우려했다.

 

같은 통신 관련 자료라도 통신비밀보호법에 따른 통신사실확인자료는 법원의 허가가 필요하다. 통화내역이나 기지국 접속 정보, 인터넷 로그 등은 원칙적으로 법원 영장을 받아야 제공받을 수 있으며, 긴급 제공 이후 사후 허가를 받지 못하면 해당 자료를 즉시 폐기하도록 규정돼 있다.

 

이에 인권위는 지난달 25일 국회의장에게 제출한 의견서에서 전기통신사업법 개정 필요성을 강조했다. 통신이용자 정보 취득 과정에 법원 허가 절차를 도입하고 주민등록번호와 같은 민감 정보 제공을 제한해야 한다는 것이다. 또 취득한 정보의 폐기와 목적 외 사용 금지, 비밀 유지 의무 등을 법률에 명확히 규정해야 한다고 밝혔다.

 

법 개정 이전에도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는 입장도 내놨다. 인권위는 민감 정보 제공을 최소화하고 취득한 정보는 일정 기간 이후 폐기하는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목적 외 활용 금지와 비밀 유지 의무 강화, 정보 공개 확대, 관련 가이드라인 마련, 기관 내부 심사 절차 도입 등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에게는 통신사업자가 수사기관에 제공한 이용자 정보 현황을 보다 적극적으로 공개하고 제도 운영 기준을 담은 ‘통신이용자 정보 제공제도 가이드라인’을 마련할 것을 권고했다.

 

또 국방부와 검찰, 경찰,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국세청, 국가정보원 등 수사기관에는 정보 요청 시 내부 사전 심사를 거쳐 필요한 최소 범위의 정보만 요구하도록 하는 통제 절차를 마련할 것을 요청했다.

 

국제사회에서도 관련 제도에 대한 문제 제기가 이어져 왔다. 유엔 자유권규약위원회는 2015년 우리 정부에 대한 최종 견해에서 영장 없이 통신 이용자 정보를 제공받는 제도에 우려를 표하며 법 개정을 권고했다.

 

2017년에는 유엔 의사·표현의 자유 특별보고관이 헌법재판소에 의견서를 제출해 영장 없는 개인정보 수집이 국민의 기본적 자유를 침해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설아 기자 seolla@sisalaw.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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