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호사의 일기 (2) : ‘코즈믹 캘린더’로 환산해 본 인연

  • 등록 2025.09.26 18:04: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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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호사가 되고 난 뒤에 보니 사무실에 ‘내 것’이 많아졌다. 공직 생활 때는 그곳에 있는 책상도, 컴퓨터도, 필통과 연필, 액자 속 그림 그리고 슬리퍼도 내 것이 아니었다. 나를 도와주는 직원들도 내가 뽑은 것이 아니고 내가 월급을 주는 것도 아니었다.

 

그러나 지금은 내 취향이 반영된 사무실에서 내가 산 슬리퍼를 신고 지낸다. 직원들도 내가 뽑았고 매달 내가 월급을 준다. 변호사가 된 뒤 또 하나 큰 변화는 사람들과 인연의 형태가 달라졌다는 것이다.

 

공직에 있을 땐 나를 찾아오는 사람들과 인간적 관계를 맺는다기보다 ‘업무의 대상’으로 느낄 때가 많았다. 그런데 변호사가 되고 나니 나를 찾는 사람들과 인간적인 관계를 맺게 된다. 특히나 피해자인 의뢰인이 찾아올 때면 그 인연의 소중함이 더 느껴진다.

 

의뢰인들은 인생에서 가장 어렵고 힘든 시기에 변호사를 찾는다. 그들은 남에게 쉽게 털어놓을 수 없는(그것은 때로 비밀이기도 하지만 비밀이 아니더라도 누구나 믿을 수는 없는 것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말을 내게 털어놓는다.

 

내가 위로하고 믿음을 주면 피해자들은 더 큰 힘을 낸다. 그리고 그들이 느끼는 불편함, 좌절감, 아픔을 나 역시 느낀다. 그의 인생에서 가장 어려운 시기에 변호사를 찾았고 변호사는 이제 가장 가까운 조력자로서 발목을 서로 묶은 이인삼각 달리기처럼 같은 편이 되어 걷는다.

 

미국의 과학자 칼 세이건의 ‘코즈믹 캘린더’에 따르면 우주의 역사 138억 년을 1년짜리 달력으로 환산했을 때 우주가 1월 1일 0시에 탄생했다면 46억 년 된 지구는 9월 14일에 탄생했고, 공룡은 크리스마스에 등장했으며, 호모사피엔스는 12월 31일 밤 10시 반에 처음으로 태어났고, 예수는 12월 31일 밤 11시 59분 56초에 태어났다.

 

이 캘린더 기준으로 인간의 수명 70살이라는 것은 0.15초에 불과한데, 서로 다른 두 사람이 같은 시간대에 공존할 확률은 365일×24시간×60분×60초 분의 0.15에 불과하다. 공간적으로도 그렇다. 이렇게 넓은 세상에서, 대한민국이라는 작은 나라에서 그 많은 변호사 사무실 중 이곳에서 두 사람이 만나 마주 앉아 있는 것 자체도 기적 같은 일이다.

 

변호사와 의뢰인은 서로를 선택할 수 있다. 두 사람이 서로 원해야만 변호사가 변호사가 되고 의뢰인은 의뢰인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그들과 인연을 맺을 때마다 어쩐지 신기하고 반갑다.

 

(다음 화에 계속)

 

※ 이 칼럼은 일반적인 정보 제공을 위한 것으로, 구체적 사안에 대한 법률자문을 대체하지 않습니다.

정재민 변호사 CHDWOA@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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