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 사람이 결합해 범죄를 저질렀더라도 내부에 지휘·통솔 체계와 지속적 조직성이 입증되지 않는 경우 형법상 범죄단체로 인정할 수 있는지 여부가 쟁점이 된 가운데, 대법원이 엄격한 해석 기준을 재확인했다.
대법원 3부(주심 오석준 대법관)는 11일 국가보안법 위반 등 혐의로 기소된 충북동지회 소속 박모씨에게 징역 5년과 자격정지 5년을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대법원은 국가보안법상 이적단체 구성, 범죄단체 조직, 찬양·고무, 간첩, 편의제공 혐의에 대해서는 무죄로 판단했다. 반면 북한 공작원과의 통신, 특수잠입·탈출, 자진지원·금품수수 혐의는 유죄로 인정했다.
대법원 “검사가 제출한 증거만으로 피고인이 북한과 그 구성원의 활동을 찬양·고무하거나 국가변란을 선전·선동할 목적이 있었다고 보기 어렵다”면서 “범죄를 반복적으로 실행할 수 있는 조직체계를 갖춘 범죄단체를 조직했다는 점 역시 증명됐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다만 북한 공작원과의 접촉 행위 자체의 위험성은 인정했다. 재판부는 “피고인이 북한 공작원과 통신한 행위는 국가 안전에 해악을 끼칠 위험이 있고 지령을 받기 위해 캄보디아를 경유해 출입국한 행위는 국가보안법상 특수잠입·탈출죄에 해당한다”고 밝혔다.
박씨는 2017년 북한 문화교류국 공작원의 지령을 받아 충북동지회를 결성하고 간첩 활동을 벌였다는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1심에서는 징역 14년이 선고됐으나 항소심에서는 징역 5년으로 크게 감형됐다.
앞서 위원장 손모씨 등 다른 조직원 3명도 1심에서 징역 12년을 선고받았으나 항소심에서 징역 2~5년으로 감형됐고 올해 3월 대법원에서 확정 판결을 받았다.
이번 사건에서 핵심 쟁점 가운데 하나는 충북동지회를 형법상 ‘범죄단체’로 볼 수 있는지 여부였다.
형법 제114조는 사형이나 무기 또는 장기 4년 이상의 범죄를 목적으로 하는 단체를 조직하거나 가입한 경우를 처벌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단순히 여러 사람이 함께 범죄를 계획했다는 사정만으로는 범죄단체가 성립하지 않는다. 대법원은 범죄단체가 성립하려면 일정 범죄 수행을 공동목적으로 하는 계속적인 결합체가 존재해야 하고 조직 내부에 최소한의 지휘·통솔 체계가 있어야 한다는 기준을 제시하고 있다.
하급심에서도 이러한 기준을 엄격하게 적용하는 사례가 이어지고 있다. 실제로 2025년 수원지방법원 성남지원은 불법 대부업 조직 사건과 관련해 범죄단체 조직 혐의를 무죄로 판단했다.
당시 사건에서는 총책, 콜팀, 출동팀, 수금팀 등 역할 분담이 존재하고 조직원도 10명가량 참여해 수년 동안 불법 대부업을 운영했다. 그러나 재판부는 조직 구조가 형법상 범죄단체 수준에 이르지 않는다고 봤다.
재판부는 “각 역할이 나눠져 있기는 하지만 특별한 지시·복종 관계가 형성돼 있다고 보기 어렵다”며 “구성원들도 친분 관계를 바탕으로 결합했고, 역할 이동이 비교적 자유로워 체계적인 조직 구조가 형성됐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이어 “검사가 제출한 증거만으로는 해당 조직이 형법 제114조에서 말하는 계속적인 결합체나 통솔체계를 갖춘 범죄단체라고 인정하기 부족하다”고 밝혔다.
법조계에서는 이러한 판례 흐름이 조직범죄와 단순 공범 관계를 엄격히 구분하려는 취지라고 설명한다. 여러 사람이 범행에 관여했더라도 지속적인 조직 구조와 지휘 체계가 입증되지 않으면 범죄단체 조직죄를 적용하기 어렵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