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자단체 “분만 의료사고, 형사고소 없이도 울분 해소 가능해야”

  • 등록 2025.09.17 12:5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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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과의 처벌 대한 의료계 반발 속 제도 개선 촉구

 

대학병원 산부인과 의사의 분만 의료사고 사건을 둘러싸고 의료계가 형사 기소의 부당함을 주장하는 가운데 환자단체는 의료사고 피해자가 형사 절차에 의존하지 않아도 되는 제도적 환경을 마련해야 한다고 밝혔다.

 

한국환자단체연합회는 17일 서울 영등포구에서 기자간담회를 열고 의료사고 피해자 보호 제도의 개선 필요성을 강조했다.

 

연합회는 “피해자가 형사 고소를 선택할 수밖에 없는 구조가 계속되는 한 의료사고 관련 고소는 줄어들기 어렵다”며 “정부와 국회, 의료계가 피해자 중심의 제도 개선에 나서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번 논쟁은 최근 법원이 분만 과정에서 발생한 의료사고와 관련해 산부인과 의사에게 약 6억5000만원의 손해배상 책임을 인정한 판결 이후 촉발됐다.

 

해당 판결이 알려지자 의료계에서는 불가피한 의료사고에 대해서까지 과도한 책임을 묻고 있다는 반발이 이어지고 있다.

 

문제가 된 사건은 2018년 한 대학병원에서 발생했다. 당시 산모였던 피해자는 출산 과정에서 태어난 아이에게 뇌성마비가 발생했다며 담당 산부인과 교수를 형사 고소했다. 피해자는 같은 병원에서 근무하던 의사이기도 했다.

 

이후 민사소송 1심 재판부가 의료진의 손해배상 책임을 인정하자 대한의사협회와 대한의학회, 상급 종합병원 산과 의사들이 잇따라 성명을 내고 “의료진에게 과도한 책임을 묻는 판결”이라며 반발했다.

 

반면 환자단체는 의료사고 발생 이후 환자 측이 충분한 설명을 듣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고 지적했다. 의료기관이 사고에 대해 유감을 표명하거나 재발 방지 대책을 설명하고 신속한 피해 보상을 하는 절차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현실도 문제로 지적됐다.

 

연합회는 “의료기관이 과실을 인정하지 않는 상황에서 피해자가 선택할 수 있는 대응 수단은 결국 형사 고소와 민사소송뿐인 경우가 많다”며 “형사 절차에 의존하지 않아도 분쟁이 해결될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와 관련해 △경미한 과실이 있는 분만 의료사고에 대한 국가 보상 체계 확대 △의료사고 발생 시 설명 의무 강화 △의료진의 유감 표명을 법적 책임의 증거로 사용하지 못하도록 하는 장치 △피해자 지원을 위한 트라우마센터 설치 등을 입법 과제로 제시했다.

 

의료사고 책임을 둘러싼 논쟁은 의료과실 판단 기준과 분쟁 해결 구조에서 비롯된다는 지적도 나온다.

 

대법원은 의료과실 판단과 관련해 단순히 치료 결과가 좋지 않았다는 사정만으로 과실을 인정할 수 없고, 의료행위 당시의 의료 수준과 진료 환경을 기준으로 규범적으로 판단해야 한다는 입장을 유지해 왔다(대법원 선고 2007다62505).

 

또 의사는 여러 치료 방법 중 적절하다고 판단되는 방식을 선택할 수 있는 합리적인 재량이 인정된다는 점도 판례에서 반복적으로 강조돼 왔다.

 

다만 설명의무 위반이 인정되는 경우에도 곧바로 모든 손해에 대한 배상 책임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대법원은 설명의무 위반만으로는 사고로 발생한 손해 전부의 배상 책임이 인정되기 어렵고, 치료 과정의 주의의무 위반과 동일하게 평가될 정도의 중대한 위반이 인정돼야 한다고 판시한 바 있다(대법원 선고 2011다29666).

 

이처럼 의료과실 판단 기준과 실제 분쟁 해결 구조 사이의 간극이 의료계와 환자단체 간 시각 차이를 낳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의료계는 불가피한 합병증까지 형사 책임으로 이어질 경우 분만 진료 자체가 위축될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한 의료계 관계자는 “의료 행위는 본질적으로 위험을 동반할 수밖에 있는데 결과가 좋지 않다는 이유만으로 형사 책임까지 이어지면 필수 의료 분야가 더욱 위축될 수 있다”고 말했다.

 

반면 환자단체는 피해자가 충분한 설명과 보상을 받을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마련되지 않는 한 형사 고소가 의료 분쟁 해결 수단으로 계속 활용될 수밖에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설아 기자 seolla@sisalaw.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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