업무와 관련된 연속적인 회식 뒤 급성 알코올 중독으로 사망한 근로자에 대해 법원이 산업재해로 인정해야 한다는 판단을 내렸다.
21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행정법원 행정3부(부장판사 최수진)는 영업관리 업무를 맡던 A씨가 2022년 자택 주차장 차량에서 숨진 채 발견된 사건과 관련해 배우자 이모씨가 근로복지공단을 상대로 제기한 유족급여 및 장의비 부지급 처분 취소 소송에서 원고 승소 판결을 선고했다.
부검 결과 A씨의 사망 원인은 급성 알코올 중독으로 확인됐다. 조사 과정에서는 A씨가 사망 직전까지 사흘 연속 업무 관련 회식에 참석해 음주를 이어간 사실이 드러났다.
유족은 업무와 연관된 회식 자리에서 과도한 음주가 이어졌고, 그 영향으로 사망에 이르렀다며 산업재해로 인정해 유족급여를 지급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반면 근로복지공단은 이를 업무상 질병으로 보기 어렵다며 보상 신청을 받아들이지 않았고 곧 행정소송으로 이어졌다.
판결문에 따르면 A씨는 2022년 6월 29일부터 7월 1일까지 3일 연속으로 저녁 회식에 참석했다. 첫 번째 회식은 백화점 관계자들을 접대하기 위해 회사가 마련한 공식 자리로 회사 직원과 거래처 관계자 등 10명이 참석했고 비용도 회사 경비로 처리됐다.
다음 날 열린 회식은 해외 법인 주재원과 본사 직원 간 친목과 격려를 위한 자리로 30명 이상이 참석해 상당량의 술이 소비됐다.
사망 전날에는 해외 법인 현지 직원들을 위한 식사 자리가 이어졌으며, 이 자리에서는 소주와 맥주뿐 아니라 위스키 등 도수가 높은 술까지 함께 마신 것으로 조사됐다.
재판부는 마지막 회식에서 짧은 시간 동안 고도주를 집중적으로 섭취한 점을 급성 알코올 중독 발생의 주요 원인으로 봤다.
그러면서 “망인은 업무 관련 회식에 연속적으로 참석해 음주를 했고 그 결과 급성 알코올 중독 상태에 이르러 사망한 것으로 보인다”며 “이 같은 사정에 비춰 보면 업무와 사망 사이에 상당한 인과관계가 인정된다”고 밝혔다.
의학적 감정 결과도 이러한 판단을 뒷받침했다. 직업환경의학과 감정의는 "소주 1병을 마신 경우 체내 알코올이 완전히 분해되기까지 약 25시간이 소요돼 3일 연속 음주가 이어졌다면 이전에 섭취한 알코올이 충분히 분해되지 않은 상태에서 추가 음주가 이뤄졌을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도 "알코올이 체내에서 완전히 분해되기 전에 반복적으로 음주가 이어지면서 혈중 알코올 농도가 높아졌을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했다.
근로복지공단은 마지막 회식이 회사가 주관한 공식 행사나 업무 지시에 따른 모임이 아니라 개인적인 식사 자리였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법원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부는 "A씨가 해외 법인과 거래처를 담당하는 영업 업무를 수행하고 있었고 함께 식사한 현지 직원들과 업무적으로 긴밀한 협력 관계에 있었다"며 "식사 비용이 약 100만원에 달해 단순한 친목 모임으로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회식 과정에서 발생한 사고가 산업재해로 인정되는지는 회식의 업무 관련성과 사용자 지배·관리 여부가 핵심 기준으로 제시된다.
대법원은 회식이 업무 수행 과정의 연장선에 있고 사용자 지배·관리 아래 있었다면 그 과정에서 발생한 사고 역시 업무상 재해로 인정될 수 있다고 판단한 바 있다(대법원 선고 2016두54589 판결).
또 회사 행사 이후 회식을 마치고 귀가하던 중 발생한 교통사고 사망 사건에서도 행사와 회식, 귀가 과정이 업무와 밀접하게 연결돼 있다면 산재로 볼 여지가 있다고 판시했다(대법원 선고 2018두35391 판결).
다만 모든 회식 사고가 산업재해로 인정되는 것은 아니다. 2019년 서울행정법원은 회식 후 만취 상태에서 음주운전을 하다 교통사고로 사망한 사건에서는 산재로 인정하지 않았다.
당시 재판부는 혈중알코올농도가 매우 높은 상태에서 음주운전을 했고 통상적인 귀가 경로를 벗어난 운전이 사고의 직접적인 원인이 됐다며 업무와의 상당 인과관계를 인정하기 어렵다고 판시했다.
법률사무소 로유 배희정 대표변호사는 “산업재해는 근로자가 통상적인 업무 수행 과정뿐 아니라 그에 수반되는 활동에서 발생한 사고와 질병도 포함된다”며 “회식이 업무와 밀접하게 연결된 상황이라면 그 자리에서 발생한 과도한 음주로 인한 사고 역시 산재로 인정될 가능성이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회식 참석자 구성과 목적, 비용 처리 방식 등 업무 관련성을 보여주는 자료와 함께 음주 경위와 의학적 사망 원인이 입증되는지가 산재 인정 여부를 좌우하는 중요한 요소가 된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