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동휠체어를 이용한 지하철 시위 과정에서 법원이 이를 형법상 ‘위험한 물건’으로 인정하면서 형사재판에서 말하는 위험한 물건의 의미가 다시 주목받고 있다. 재판의 핵심은 전동휠체어의 용도 자체가 아니라 당시 상황에서 사람의 신체에 위해를 가할 수 있는 방식으로 사용됐는지 여부다.
24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서부지방법원 형사1단독(박지원 부장판사)는 특수공무집행방해 등 혐의로 기소된 유진우 서울장애인차별철폐연대 활동가에게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유씨는 2023년 1월 서울 지하철 삼각지역 승강장에서 열린 장애인 권리 예산 확보 요구 시위 과정에서 전동휠체어로 경찰관을 충격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이번 사건의 쟁점은 전동휠체어가 형법상 ‘위험한 물건’에 해당하는지 여부였다. 피고인 측은 전동휠체어가 거동이 불편한 장애인에게 사실상 신체 기능을 보완하는 필수 이동수단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반면 법원은 물건의 본래 용도보다 당시 상황에서 상해를 발생시킬 수 있는 현실적 위험성이 있었는지를 판단 기준으로 삼았다.
현행 형법은 위험한 물건을 휴대해 공무집행방해를 저지른 경우 일반 공무집행방해보다 무겁게 처벌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여기서 말하는 위험한 물건은 칼이나 둔기처럼 원래 공격을 목적으로 만들어진 도구에만 한정되지 않는다.
대법원은 특수공무집행방해에서 말하는 위험한 물건은 흉기에 국한되지 않고 사람의 생명이나 신체에 해를 가하는 데 사용될 수 있는 모든 물건을 포함한다고 판시했다. 또 ‘휴대’의 의미 역시 단순한 소지를 넘어 해당 물건을 이용하는 행위까지 포함된다고 봤다(대법원 선고 2005도1114).
판례 역시 사람의 생명이나 신체에 위해를 가할 수 있는 물건이라면 그 종류를 불문하고 위험한 물건에 해당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실제로 대법원은 자동차처럼 일상적인 이동수단도 사용 방식과 당시 상황에 따라 위험한 물건이 될 수 있다고 판단해 왔다.
결국 위험한 물건 여부는 물건의 이름이나 본래 용도만으로 판단되지 않는다. 법원은 물건의 무게와 재질, 속도와 가속도, 사용 방식, 상대방과의 거리, 현장의 혼잡도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한다. 같은 물건이라도 특정 상황에서 사람에게 충격을 가해 상해를 입힐 위험이 있다면 형법상 위험한 물건으로 평가될 수 있다는 의미다.
이번 사건에서도 재판부는 전동휠체어가 피고인에게 필수적인 이동 장비라는 점 자체는 인정했다. 그러나 승강장처럼 혼잡한 공간에서 일정한 무게와 속도를 가진 전동휠체어가 경찰관을 향해 충돌할 경우 상해가 발생할 위험이 충분하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전동휠체어는 거동이 불편한 피고인의 이동 수단이자 사실상 신체 기능을 보완하는 필수품”이라면서도 “사건 당시 전동휠체어의 무게와 가속도를 고려하면 충돌 시 상해 결과가 발생할 가능성이 있었다”고 밝혔다. 이어 “피고인이 위험한 물건을 휴대해 폭행한 경우에 해당한다”고 판시했다.
재판에서는 경찰의 직무집행이 적법했는지도 쟁점이 됐다. 공무집행방해죄가 성립하려면 공무원의 직무집행이 적법해야 한다.
유씨 측 변호인은 “피고인이 화장실로 이동하기 위해 휠체어 방향을 바꾸려 했는데 경찰이 이를 막았다”며 “급박한 위험 상황이 아닌데도 이동을 제한한 것은 과도한 조치”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재판부는 당시 경찰과 서울교통공사가 승강장 안전 확보와 질서 유지를 위해 스크린도어 앞에서 승강장 접근을 제한하고 있었고, 이는 공공의 안전을 위한 최소한의 조치였다고 판단했다. 이에 따라 “화장실을 가기 위해 방향을 바꾸는 과정에서 우연히 충돌했다”는 피고인 측 주장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법조계에서는 이번 판결이 장애인의 이동권 문제와는 별개로 형법상 위험한 물건 개념이 얼마나 넓게 해석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사례라고 보고 있다. 즉 전동휠체어 자체가 위험하다고 본 것이 아니라 특정 상황에서 사용 방식에 따라 위험한 물건으로 평가될 수 있다는 것이다.
유씨는 1심 선고 후 “휠체어가 위험한 물건이라면 장애인이 사실상 밖에 나올 수 없는 상황이 생길 수 있다”며 “비장애인도 걷다가 부딪힐 수 있는데 장애인에게만 법적 잣대를 들이미는 것은 집회를 하지 말라는 것과 다르지 않다”고 주장했다. 이어 “법원이 휠체어를 신체의 일부로 인정하지 않은 점도 개탄스럽다”고 말했다.
유씨 측 변호인은 1심 판결에 불복해 항소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