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병교육대에서 규정을 어긴 군기훈련을 지시해 훈련병을 숨지게 한 육군 간부들에게 실형이 확정됐다. 대법원은 군 간부가 훈련병의 생명과 신체를 보호해야 할 책임을 저버린 채 위법한 군기훈련을 실시했고 쓰러진 뒤에도 적절한 조치를 하지 않은 책임이 무겁다고 판단했다.
대법원 3부(주심 이숙연 대법관)는 25일 학대치사 등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육군 12사단 신병교육대 중대장 강모씨에게 징역 5년 6개월을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고 밝혔다. 함께 기소된 부중대장 남모씨 역시 징역 3년형이 최종 확정됐다.
이 사건은 지난해 5월 강원 인제군 12사단 신병교육대에서 발생했다. 조사 결과 강씨와 남씨는 훈련병들에게 규정에 없는 군기훈련을 지시했고 훈련병들은 30㎏이 넘는 완전군장을 한 채 보행과 뜀걸음, 선착순 달리기, 팔굽혀펴기 등을 반복했다.
이 과정에서 훈련병 A씨가 의식을 잃고 쓰러졌고, 이후 치료를 받다 이틀 뒤 숨졌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은 사망 원인을 열사병에 따른 다발성 장기부전으로 판단했다.
1심은 중대장 강씨에게 징역 5년, 부중대장 남씨에게 징역 3년을 선고했다. 이후 피고인들과 검찰이 모두 항소했다.
강씨 측은 항소심에서 규정 위반 사실 자체는 일부 인정하면서도 “군기훈련 승인권자로서 절차를 제대로 확인하지 못한 잘못이 있을 뿐 피해자에게 견디기 어려운 고통을 주려는 의도는 없었다”고 주장했다.
또 “훈련 전 부중대장에게 ‘가군장’을 지시했기 때문에 피해자들이 책을 넣은 완전군장 상태였다는 점은 몰랐고 훈련 중 적절한 휴식도 부여했다”고 덧붙였다.
학대치사 혐의와 관련해서도 강씨 측은 사망 결과를 모두 자신의 책임으로 돌릴 수 없다고 항변했다. 훈련병이 쓰러진 뒤 온열손상키트 등을 이용해 조치를 했고, 이후 의무실과 병원에서 급속 냉각이나 혈액투석이 늦어진 점도 사망에 영향을 미쳤다는 것이다.
강씨 측 변호인은 “피해자가 고도비만 상태였던 특이체질 역시 고려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당시 기온이 28.1도였고 훈련 시간도 약 45분에 불과했던 만큼 열사병에 따른 사망까지는 예견하기 어려웠다는 것이다.
부중대장 남씨 측도 책임 범위를 다퉜다. 남씨 측은 “자신이 계획한 군기훈련은 보행 두 바퀴 정도였고 이후 중대장 강씨가 개입해 완전군장 상태에서 팔굽혀펴기와 뜀걸음 등을 지시했기 때문에 모든 행위를 공동범행으로 볼 수 없다”고 항변했다.
반면 검찰은 원심이 이 사건을 상상적 경합으로 본 것은 잘못이라고 지적했다. 검찰은 “피해자마다 구체적인 가혹행위가 다르다”며 “침해된 법익 역시 각자의 신체와 생명이라는 일신전속적 법익인 만큼 각 범행은 실체적 경합으로 봐야 한다”고 반박했다.
항소심 재판부는 피고인들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CCTV 영상과 피해자 진술, 당시 훈련 상황 등을 종합할 때 피고인들이 규정을 명백히 위반한 군기훈련을 실시한 사실이 인정된다고 봤다.
재판부는 “피고인들이 실시한 군기훈련은 육군규정 120 병영생활규정 등 관계 규정을 위반한 위법한 군기훈련임이 명백하다”며 “이 사건 군기훈련은 단순한 훈육을 넘어 군형법상 직권남용 가혹행위이자 형법상 학대에 해당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피고인들은 직무 권한의 정당한 한도를 넘어 피해자들에게 견디기 어려운 육체적 고통을 가했고 그로 인해 생명과 신체에 위험을 초래했다”고 지적했다.
강씨가 ‘가군장’을 지시했을 뿐 완전군장 상태는 몰랐다는 주장도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재판부는 “군장의 크기와 훈련병들의 자세만으로도 완전군장 여부를 충분히 인식할 수 있었다”며 “훈련 도중 군장에서 책이 쏟아져 나온 상황에서도 훈련을 계속한 점을 고려하면 최소한 그 시점 이후에는 이를 알고도 군기훈련을 지속한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사망과의 인과관계도 인정됐다. 재판부는 “피해자는 당시 기온 28.1도 환경에서 30㎏이 넘는 완전군장을 착용한 채 약 45분 동안 보행과 뜀걸음, 팔굽혀펴기 등을 반복하다 쓰러졌고 의무실 도착 당시 고막 체온이 41.9도에 달했다”며 “피고인들의 학대행위로 인해 열사병이 발생했고, 그 합병증인 다발성 장기부전으로 사망에 이르렀다”고 판단했다.
의무실이나 병원 치료 지연 주장도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재판부는 “설령 이후 치료 과정에서 다른 사정이 일부 사망 결과에 영향을 미쳤다 하더라도 피고인들의 학대행위로 초래된 위험이 그대로 사망이라는 결과로 현실화된 이상 인과관계는 단절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피해자의 비만 상태 역시 책임을 약화시키는 사정으로 보지 않았다. 재판부는 “피해자의 체질적 특성은 인과관계를 단절시키는 사정이 아니라 오히려 결과 발생 가능성을 더 쉽게 예견할 수 있게 하는 요소”라고 밝혔다.
예견 가능성에 대해서도 엄격한 판단을 내렸다. 재판부는 “입소 9일차 훈련병들에게 무리한 군기훈련을 실시할 경우 열사병 등 온열질환이 발생할 수 있다는 점은 충분히 예견 가능했다”며 “관련 공문 등을 통해 열사병의 치사율 역시 인식할 수 있었다”고 지적했다.
검찰의 항소는 일부 받아들여졌다. 항소심은 피해자별 행위를 실체적 경합으로 보고 경합범 가중을 적용했다.
재판부는 “동일한 장소와 기회에서 범행이 이뤄졌더라도 피해자마다 가혹행위의 내용이 다르고 침해된 법익 역시 각자의 신체와 생명이라는 점에서 이를 하나의 행위로 평가하기 어렵다”고 판시했다.
양형 이유도 설명했다. 재판부는 “징병제 아래에서 병사의 생명과 신체를 보호하는 것은 국가와 군이 가장 우선적으로 지켜야 할 가치”라며 “군 지휘관인 피고인들이 후진적인 병영문화를 답습해 충분히 예방할 수 있었던 군대 내 사망 사고를 초래했다”고 지적했다.
이어 “국가가 병사들의 생명과 신체를 가장 우선적으로 보호할 것이라는 우리 사회의 기본적 기대를 정면으로 배반한 행위”라고 덧붙였다.
항소심은 중대장 강씨의 형량을 징역 5년 6개월로 높였고, 부중대장 남씨의 징역 3년형은 유지했다. 대법원도 원심 판단에 법리 오해가 없다고 보고 이를 그대로 확정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