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적으로 전세사기 피해가 확산하는 가운데 수원 일대에서 수백억원대 전세 사기를 벌인 이른바 ‘가족 사기단’ 사건의 주범에게 대법원이 중형을 확정했다.
대법원 2부(주심 권영준 대법관)는 25일 사기 혐의로 기소된 정모씨의 상고심에서 징역 15년을 선고한 원심 판결을 확정했다. 같은 사건으로 재판에 넘겨진 배우자 김모씨에게는 징역 6년, 아들에게는 징역 4년이 각각 확정됐다.
정씨 가족은 2021년 1월부터 2023년 9월까지 경기 수원 일대에서 가족 명의와 법인 명의로 확보한 주택 788채를 이용해 대규모 전세 사기를 벌인 혐의를 받는다. 검찰은 이들이 약 500명의 임차인으로부터 전세보증금 약 760억원을 편취한 것으로 보고 2023년 12월 구속 기소했다.
수사 결과 이들은 별도의 자기자본 없이 임차인의 전세보증금을 이용해 부동산 매매대금을 마련하거나 다른 임차인의 보증금을 반환하는 방식으로 임대사업을 이어간 것으로 조사됐다. 특히 감정평가사였던 아들은 임대 건물 가치를 실제보다 높게 평가하는 방식으로 범행에 가담한 것으로 파악됐다.
피고인들은 재판 과정에서 임대차보증금 반환보증보험에 가입돼 있었고 계약이 묵시적으로 갱신된 만큼 사기죄가 성립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1심 재판부는 “피고인의 무리한 사업 운영으로 500명이 넘는 임차인이 큰 피해를 입었다”며 “부동산을 명의신탁하고 가장납입 방식으로 법인을 다수 설립하는 등 불법 행위를 반복한 점을 보면 준법 의식이 부족하다”고 판단했다. 항소심도 같은 취지로 판단해 1심과 동일한 형량을 선고했다.
대법원도 원심 판단에 문제가 없다고 보고 판결을 확정했다. 대법원은 “원심 판단이 논리와 경험칙에 반해 자유심증주의의 한계를 벗어났다고 보기 어렵고 사기죄 성립에 관한 법리를 오해한 잘못도 없다”고 밝혔다.
전세사기 피해는 여전히 이어지고 있다. 국토교통부가 지난 6월 발표한 전세사기 피해 실태조사에 따르면 전세사기특별법 시행 이후 피해 접수와 피해자 결정 건수는 감소 추세를 보이고 있지만 신규 피해가 계속 발생하고 있어 전세사기 문제가 완전히 해소됐다고 보기는 어렵다는 분석이 나온다.
피해 접수 건수는 2023년 6월 약 3400건에서 2025년 5월 약 1700건 수준으로 줄었고, 피해자 결정 건수도 2023년 8월 약 2700건에서 2025년 5월 약 900건 수준으로 감소했다.
지역별 피해자는 서울이 8334명으로 가장 많았고 경기 6657명, 대전 3569명, 인천 3341명, 부산 3328명 순이었다.
상위 5개 지역 피해자 비중은 전체의 83%에 달했으며, 경기 수원시와 인천 미추홀구, 서울 관악구와 강서구 등 일부 지역에서는 대규모 피해가 집중된 것으로 나타났다.
피해 연령대는 20~30대 청년층이 75.1%를 차지했다. 30대가 49.28%로 가장 많았고, 20대가 25.83%였으며 사회초년생과 신혼부부 등 젊은 세대가 주요 피해 계층으로 분석됐다.
보증금 규모는 3억원 이하가 97.46%로 대부분을 차지했다. 1억~2억원 구간이 42.31%로 가장 많았고, 1억원 이하도 41.88%였다.
피해 주택 유형은 다세대주택이 30.3%로 가장 많았고, 오피스텔 20.8%, 다가구주택 17.8%, 아파트 14.2% 순이었다.
경·공매가 진행된 주택의 경우 임차인이 실제로 회수한 평균 보증금은 약 6000만원 수준으로 집계됐다. 이는 평균 보증금의 약 46.7%에 불과해 피해 회복이 쉽지 않은 상황이다.
국토교통부 분석에 따르면 전세사기 피해는 크게 다섯 가지 유형으로 나타났다.
가장 큰 비중은 ‘동시진행 및 무자본 갭투기’ 유형으로 전체 피해의 48%를 차지했다. 보증금 반환 능력이 없는 상태에서 무자본 갭투기 방식으로 다수의 주택을 매입한 뒤 임대차 계약을 동시에 체결하는 방식이다.
두 번째로 많은 유형은 ‘선순위 권리 과다’ 사례로 전체의 43%였다. 공동담보나 선순위 근저당이 과도하게 설정돼 경매가 진행되더라도 임차인이 보증금을 배당받지 못하는 구조다.
이 밖에 신탁회사 동의 없이 임대차 계약을 체결하는 신탁 사기와 무권 계약이 5%를 차지했고, 근저당 말소나 보증보험 가입 등을 속이는 계약상 기망 사례도 일부 확인됐다.
법무법인 청 곽준호 변호사는 “전세 계약을 체결하기 전 등기부등본과 선순위 권리 관계를 반드시 확인해야 한다”며 “보증보험 가입 여부와 집주인의 재정 상태 등을 종합적으로 점검하는 것이 피해 예방에 중요하다”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