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법상 배임죄 폐지 가시화…재판 중 사건들 영향 불가피

  • 등록 2025.10.08 16:4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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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행 중 수사·재판에 직접 영향…
법령이 바뀌면 공소권도 사라져
배임죄 폐지 시 재판 종결 가능성

 

정부와 여당이 형법상 배임죄를 폐지하는 방안을 공식화하면서, 현재 진행 중인 고위공직자 및 기업인 관련 수사와 재판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전망이 법조계 안팎에서 제기되고 있다.

 

특히 배임 혐의로 재판이 중지된 이재명 대통령 사건 역시 ‘면소’ 판결로 종결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8일 법조계와 정치권에 따르면, 정부와 여당은 지난달 30일 발표한 ‘경제형벌 합리화 1차 방안’에서 형법상 일반·업무상 배임죄의 폐지를 포함한 형벌 규정 정비 방향을 밝혔다. 정성호 법무부 장관은 “빠른 시일 내 입법 제정에 최선을 다하겠다”며 “검찰도 기업에 부담을 주지 않도록 배임죄 적용을 신중히 하고 있다”고 말했다.

 

현행 배임죄는 타인의 사무를 처리하는 자가 임무에 위배되는 행위로 재산상 손해를 끼친 경우 성립한다. 형법상 배임, 상법상 특별배임,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배임 등으로 구분되며, 기업 수사에는 주로 형법상 업무상 배임이 적용된다.

 

하지만 경영상 판단 실패까지 형사처벌 대상으로 삼는 것은 과도하다는 비판과 함께, 죄형법정주의 명확성 원칙에 어긋난다는 지적도 이어져 왔다. 실제로 횡령·배임 혐의의 무죄율은 다른 형사범죄보다 약 2배에 달하는 수준으로 집계된다.

 

법조계에선 형법상 배임죄가 폐지될 경우, 해당 조항이 적용된 진행 중 재판은 면소 판결이 내려질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 형법 제1조 제2항은 범죄 후 법령이 변경되어 형이 폐지된 경우 신법을 적용토록 하고, 형사소송법 제326조 제4호는 “범죄 후의 법령개폐로 형이 폐지된 때”를 면소 사유로 명시하고 있다.

 

실제로 이재명 대통령이 기소된 대장동·백현동 사건 중 일부는 형법상 배임 혐의가 적용되어 있으며, 폐지 법안이 국회를 통과할 경우 공소권이 소멸돼 실체 판단 없이 재판이 종결될 수 있다.

 

영향은 특검 수사 중인 주요 사건 전반으로 확대될 수 있다. 김건희 여사와의 친분을 내세워 부당 투자 유치를 시도했다는 이른바 ‘집사 게이트’ 사건에서는, 조영탁 IMS모빌리티 대표, 민경민 오아시스에쿼티파트너스 대표 등에 대해 특경법상 배임 혐의로 구속영장이 청구됐다.

 

서울~양평 고속도로 종점 변경 의혹으로 구속된 국토부 김 모 서기관에게도 업무상 배임 혐의가 적용돼 수사가 진행 중이다. 이원모 전 대통령실 인사비서관의 부인 신 모 씨 등도 배임 혐의 대상이다.

 

이외에도 이상직 전 민주당 의원, 레고랜드 조성사업 관련 배임 혐의로 재판중인 최문순 전 강원지사, 박삼구 전 금호아시아나그룹 회장, 조현범 한국앤컴퍼니그룹 회장 등 굵직한 사건들이 포함된다.

 

배임죄 폐지를 둘러싼 시각은 크게 엇갈린다. 재계는 정상적인 경영상 판단까지 수사·기소되는 현실에 대해 “경영 위축을 초래한다”며 폐지를 지지하고 있다. 한 대기업 사외이사는 “자칫 잘못된 의사결정이 형사처벌로 이어지는 구조에서는 혁신도 투자도 어렵다”고 토로했다.

 

반면 시민사회와 일부 법조계에선 경영진의 사익 추구를 통제할 장치가 사라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민사상 손해배상 청구만으로는 실질적 제재가 어렵고, 특히 소액주주 보호가 더 어려워진다는 지적도 있다.

 

법무법인 청 곽준호 변호사는 “배임죄 폐지는 단순한 조문 삭제가 아니라, 경영 책임과 형사 통제 간 경계를 다시 정립하는 중대한 사법정책”이라며 “면소 판결로 다수 사건이 실체 판단 없이 종결될 경우 국민의 법 감정과 괴리가 클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경영 자율성과 법적 책임 간 균형점을 새롭게 설계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최희원 기자 chw1641@sisalaw.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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