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회 불참 권유” 현수막 끈 잘랐지만…대법 “업무방해 아냐” 파기환송

  • 등록 2025.10.19 18: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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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물손괴는 유죄…“현수막 훼손 위법성 조각 안돼”
대법 “일회성 의견 표명은 업무방해죄 업무 아냐”

 

재개발 총회를 앞두고 경쟁 단체가 내건 현수막을 철거한 추진위원장에게 업무방해죄를 적용할 수 없다는 대법원 판단이 나왔다. 단발적 의견 표명에 불과한 행위를 ‘업무방해죄의 보호대상’으로 볼 수 없다는 취지다.

 

19일 법조계에 따르면 대법원 3부(주심 이흥구 대법관)는 업무방해 및 재물손괴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재개발추진위원회 위원장 신모 씨에게 벌금 200만 원을 선고한 원심을 일부 파기하고 사건을 서울남부지법으로 환송했다.

 

서울 영등포구에서 재개발 사업 추진 방식을 두고 두 단체 간 갈등이 오랜 기간 이어져 왔다.

 

2019년 5월 29일 신모 씨가 위원장으로 있는 ‘재개발추진위원회’(이하 추진위)는 관할 구청의 승인을 받아 법에 따라 정비사업을 추진해왔다. 반면, B씨 등이 2010년 10월 결성한 ‘도시환경정비사업 지주협의회’(이하 지주협)는 별도의 사업 방식을 주장했지만, 법상 승인 절차를 거치지 않은 단체였다.

 

2019년 9월 B씨가 결성한 지주협는 “추진위원회 구성에 대한 행정소송이 진행 중이며 검찰에 진정서를 접수했다”는 내용과 “총회에 참석하지 말라”는 문구가 적힌 현수막 3장을 게시했다.

 

이를 발견한 신씨는 과도를 이용해 현수막을 고정하고 있던 끈을 잘라 제거했으며, 같은 방식으로 다른 장소에 걸린 현수막 3장도 연달아 철거했다.

 

이에 검찰은 신씨가 지주협의회의 의사표현 활동을 방해하고 물리력을 행사했다며 업무방해죄와 재물손괴죄로 기소했다.


1심 무죄 → 2심 유죄…엇갈린 판단


1심은 신씨에게 업무방해죄와 재물손괴죄 모두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지주협의회는 적법한 승인을 거치지 않은 별도의 단체를 구성한 것”이라며 “그 활동이 업무방해죄에서 보호되는 ‘업무’에 해당한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아울러 “현수막을 발견하고 과도로 끈을 자르기만 하고 폐기하지는 않은 점을 볼 때 피고인의 행위는 정당방위에 해당해 위법성이 조각된다”고 재물손괴죄도 무죄 판결했다.

 

그러나 항소심(서울남부지법 형사항소부)은 1심 판결을 뒤집고 업무방해죄와 재물손괴죄 모두 유죄로 인정했다. 재판부는 “현수막을 통한 입장 표명은 정당한 업무 활동이며, 의사표현의 자유와 결사의 자유는 보호돼야 한다”며 “현수막을 물리적으로 철거한 행위는 업무를 방해한 것”이라고 판단했다.

 

또한 재물손괴에 대해서도 “현수막의 기능을 상실시킨 것은 재물의 효용을 해친 것으로 평가된다”며 신씨에게 벌금 200만 원을 선고했다.


대법 “업무방해죄 상 업무로 인정 안돼“…재물손괴는 인정


사건은 대법원으로 올라갔다. 대법원 제3부(주심 이흥구 대법관)는 원심을 일부 파기하고 사건을 서울남부지법으로 돌려보냈다.

 

대법원은 업무방해 혐의에 대해 “현수막은 협의회의 본래 업무를 홍보하거나 지주들에게 알리는 내용이 아니다”라며 “단순 총회 불참을 요구한 일회성 의견 표명은 업무방해죄의 보호대상이 되는 업무에 해당한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다만 재물손괴 혐의에 대해서는 유죄 판단을 유지했다. 대법원은 “현수막을 고정한 끈을 잘라 게시 기능을 상실하게 한 것은 재물의 효용을 해친 행위”라며 “정당행위나 정당방위로 위법성이 조각된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법무법인 예문정 정재민 변호사는 “단순히 타인의 재물을 파손하지 않았더라도 ‘본래의 사용 목적’을 일시적으로 해치면 재물손괴죄로 처벌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의견 표명 행위가 반복적이지 않고 특정 행사나 일시에 국한된 경우에는 이를 ‘업무’로 보호하지 않는다는 법리를 재확인한 것”이라며 “상대방의 행위가 부당하더라도 자력으로 제거하기보다 행정기관을 통해 적법하게 대응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조언했다.

박대윤 기자 bigpark@sisalaw.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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