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고액벌금자' 형집행순서 변경 안 된다 …검찰 “사실무근”

  • 등록 2025.11.04 13:4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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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액벌금 기준 無”…포괄 규정, 자의 판단 불러
검찰 “지시한 적 없다”…일선선 ‘불허 인식’ 고착

 

교정시설 현장에서 ‘형집행순서 변경’을 둘러싼 혼선이 이어지고 있다. 일부 교도소에서는 검찰로부터 고액 벌금이 선고된 수형자의 형집행순서 변경 신청을 자제하라는 취지의 안내를 받았다는 제보가 잇따르고, 실제 이 같은 이유로 신청이 불허된 사례도 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다만 검찰청과 교정시설 관계자는 이러한 주장이 사실무근이라는 입장이다.

 

4일 법조계에 따르면 형집행순서 변경은 형사소송법 제462조와 ‘자유형 등에 관한 검찰집행사무규칙’ 제39조에 근거한 제도로, 두 개 이상의 형을 선고받은 수형자가 보다 가벼운 형부터 먼저 집행받기 위해 검찰에 신청할 수 있다. 실무상으로는 가석방 요건을 조기에 충족하기 위한 수단으로 활용되는 경우가 많다.

 

<더시사법률>이 대검찰청에 확인한 결과, 검찰은 교정기관에 고액벌금 선고 수형자의 형집행순서 변경 신청을 제한하라는 지시를 내릴 권한이 없으며 실제로 그런 지시를 내린 사실도 없다고 밝혔다. 각 검찰청은 부산고등법원 2022로7 결정문에서 인용된 ‘형집행순서 변경 업무처리지침’에 따라 관련 업무를 수행하며, 같은 지침 제6항(형집행순서 변경 허가 여부의 기준)에 따라 사안별로 판단한다는 입장이다.

 

대검찰청 관계자는 “검사는 교정시설의 장으로부터 형집행순서 변경 신청을 받으면 원칙적으로 이를 허가한다”며 “다만 판결문 내용이나 수형자의 수형태도 등을 종합해 예외사유에 해당하는 경우 불허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불허 결정이 있었다면 ‘고액벌금’ 자체 때문이 아니라 지침 제6항 각호에 따른 개별 사유 판단의 결과일 가능성이 높다”고 덧붙였다.

 

그럼에도 일선 교정시설에서는 여전히 ‘고액벌금이면 형집행순서 변경이 어렵다’는 인식이 관행처럼 자리 잡고 있다. 실제 ‘형집행순서 변경 업무처리지침’ 제6항은 △형기의 3분의 1 미경과 △추가 사건 재판 진행 중 △최근 1년 내 금치 이상 징벌 전력 △벌금 납부 회피 목적의 악용 우려 △사정변경 없는 재신청 △그 밖에 수형자의 범죄 내용·수형태도·가석방 필요성 등을 고려해 부적절하다고 판단되는 경우 등을 불허 사유로 규정하고 있다. ‘고액벌금’ 자체를 기준으로 한 조항은 존재하지 않는다.

 

다만 마지막 항목인 ‘그 밖에 부적절하다고 판단되는 경우’가 지나치게 포괄적으로 규정돼 있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일부 제보자들의 불허 사유서에는 ‘범행의 죄질이 불량하고 가석방 필요성이 낮다’는 문구가 관행적으로 등장하며, 명확한 기준 없이 검사의 재량에 따라 결정되는 경우가 많다는 지적이다.

 

이에 한 교정직 공무원은 “형집행순서 변경은 검찰의 판단이 절대적이라 교정시설은 수동적일 수밖에 없다”며 “고액벌금 수형자는 애초에 불허될 가능성이 높다는 인식 탓에 신청조차 배제되는 사례가 많다”고 말했다.

 

또다른 교정시설 관계자는 “검찰의 직접 지시는 아니지만, 고액벌금 사건은 허가되는 경우가 드물어 현장에서 수형자들에게 ‘허가 가능성이 낮다’고 안내하는 경우가 있다”고 전했다.

 

법무법인 청 곽준호 변호사는 “형집행순서 변경은 형벌 집행의 합리성과 사회복귀를 돕기 위한 제도”라며 “법령상 모호한 ‘그 밖에 부적절’ 문구를 삭제하거나 구체적 예시를 명시해 자의적 해석을 막을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형집행정지나 가석방, 수용자 처우 등은 본래 인권 보장을 위한 제도인데, 실무에서는 검찰의 영향력 아래 놓여 있다”며 “이번 검찰개혁 논의 속에서 교정행정도 함께 다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보라 기자 violet0218@sisalaw.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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