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정보업체를 통해 ‘연봉 3억 원의 어린이집 원장’으로 소개받은 남성과 결혼했다가 이혼한 여성이 업체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소송에서 대법원이 업체의 책임을 인정하지 않았다.
4일 법조계에 따르면 대법원은 지난달 23일 부산에 거주하는 이모(37)씨가 대형 결혼정보업체를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 소송 상고심에서 원심 패소 판결을 확정했다.
이씨는 2022년 2월 270만 원을 내고 업체에 가입한 뒤, ‘연 소득 3억 원 어린이집 원장’으로 소개받은 남성 A씨와 같은 해 6월 결혼했다. 그러나 한 달 만에 갈등이 생겨 이혼소송을 제기했고, 이후 A씨가 실제로는 어린이집 행정직원이자 연 소득이 5,600만 원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이씨는 “업체가 배우자 정보를 제대로 검증하지 않았다”며 소송을 냈다.
1·2심은 “업체가 회원이 제출한 자료를 그대로 신뢰한 데 주의의무 위반이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판단했다.
대법원도 원심 판단에 잘못이 없다며 상고를 기각했다. 대법원은 “A씨의 부모가 어린이집을 물려줄 예정이라고 말한 점 등을 고려하면 회사가 허위 정보를 의도적으로 제공했다고 보기 어렵다”며 이씨의 청구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씨는 “어린이집 원장이 되려면 국가자격증이 필요한데, A씨는 자격증조차 없었다”며 “양육비도 실제 소득 기준으로 산정돼 손해가 크고, 변호사 비용까지 부담하게 됐다”고 호소했다.
그러나 해당 업체는 책임이 없다는 입장이다. 한 관계자는 “회원의 학력과 직업은 증빙 서류로 확인하지만, 사업자의 소득은 교제 과정에서 직접 확인하도록 계약서에 명시돼 있다”며 “수사기관이 아닌 이상 주기적으로 소득을 재확인하기는 어렵다”고 밝혔다.
비슷한 피해를 호소하는 사례도 늘어나고 있다. 20대 여성 B씨는 같은 업체에 300만 원을 내고 가입했지만, 소개받은 남성이 벌금형 전과가 있었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됐다. 온라인상에는 “프로필 사진과 실제 인상이 다르다”는 불만도 잇따른다.
한국소비자원에 따르면 2021년부터 지난해 6월까지 접수된 국내결혼중개업 관련 피해구제 신청은 1,188건으로 매년 증가하는 추세다. 현행 「결혼중개업의 관리에 관한 법률」 제25조는 결혼정보업자가 고의나 과실로 이용자에게 손해를 입힌 경우 손해배상책임을 지도록 규정하고, 제18조는 거짓된 신상정보 제공이나 중요사항 누락 시 영업정지 또는 등록취소 처분이 가능하다고 정하고 있다.
법조계에서는 이번 판결이 ‘과실 입증 책임’을 소비자에게 과도하게 지운 사례라는 지적이 나온다. 법률사무소 로유 배희정 변호사는 “상대방의 직업과 소득은 중개 과정에서 핵심 정보임에도, 법원은 업체가 허위자료를 조작한 정황이 없으면 책임을 제한적으로 본다”며 “입증책임의 부담이 결국 소비자에게 돌아간다”고 말했다.
공정거래위원회는 과거 결혼정보회사의 과장된 신상정보 제공과 환불 불가 약관 등을 불공정약관·표시광고 위반으로 제재한 바 있다. 2007년 ‘위쥬’ 사건에서는 3회 만남 이후 환불을 금지한 약관을 무효로 판단했고, 2011년 ‘가연결혼정보’ 사건에서는 허위·과장 광고에 대해 위법사실 공표 명령을 내렸다. 전문가들은 “유사 피해가 반복될 경우 행정기관의 실질적 제재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