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0년 낙동강변 살인사건 … 고문 자백과 무기징역, 그리고 21년 만의 무죄

  • 등록 2025.12.23 19:49: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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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 낙동강변서 女시신 발견
함께 있던 男 진술이 유일한 단서
최씨·장씨 고문으로 허위 자백
2021년에 재심으로 무죄 선고

 

1990년 1월 4일 새벽 부산 낙동강변 갈대숲에서 30대 여성이 숨진 채 발견됐다. 한겨울 강바람이 매서운 시간이었다. 피해자의 상의와 속옷은 위로 말려 올라가 있었고 하의는 벗겨진 상태였다. 외형만 놓고 보면 성폭력을 동반한 강력범죄 가능성이 의심되는 상황이었다.

 

초기 수사의 출발점은 함께 있었다는 남성 A씨의 진술이었다. 그는 피해 여성과 이른바 카 데이트를 하던 중이었다고 말했다. 여성이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 괴한 두 명이 차량 안으로 들이닥쳤고 이후 돌아온 여성을 성폭행한 뒤 살해했다는 설명이었다.

 

A씨는 범인 중 한 명과 물속에서 몸싸움을 벌였고 손목을 묶고 있던 공업용 테이프가 풀리면서 달아났다고 진술했다. 범인들이 자신을 결박하려 하자 차량 트렁크에 테이프가 있다고 직접 알려줬다는 말도 했다. 이 진술은 초기 수사의 토대가 됐다.

 

그가 기억한 인상착의는 단순했다. 한 명은 키가 크고 다른 한 명은 작았다는 정도였다. 이는 당시 부산 엄궁동 일대에서 발생하던 연쇄 강도상해 사건의 범인 묘사와 유사했다. 언론은 이들을 이른바 엄궁동 2인조로 불렀다. 그러나 현장에는 뚜렷한 지문이나 결정적 증거는 남지 않았다.

 

 

현장에서 약 30m 떨어진 지점에서는 체액이 묻은 손수건이 발견됐다. 1차 혈액형 감정에서는 A형 반응이 나왔고 재감정에서는 AB형 반응이 확인됐다. 피해 남성은 A형 피해 여성은 B형으로 조사됐다. 하지만 이 단서만으로는 용의자를 특정하기 어려웠다. 약 6개월간 이어진 수사도 성과를 내지 못했고 사건은 미제로 남았다.

 

전환점은 1991년 11월 찾아왔다. 을숙도 공터에서 운전 교습 중 공무원을 사칭한 인물에게 돈을 빼앗겼다는 신고가 접수됐다. 경찰에 붙잡힌 인물은 최씨였다. 그는 청년봉사단 활동 중 을숙도 공터에서 차량을 단속하다 돈을 받았다고 해명했다.

 

경찰은 그를 임의동행 형식으로 조사했다. 이 과정에서 수사는 급격히 낙동강변 사건과 연결됐다. 강압적 추궁이 이어졌고 공범을 대라는 압박 속에서 최씨는 친구 장씨의 이름을 언급했다. 두 사람은 곧 살인사건의 주범으로 지목됐다.

 

 

살인범으로 잡힌 최씨와 장씨는 일관되게 고문에 따른 허위 자백이라고 주장했다. 폭행과 물고문 거꾸로 매다는 행위 수면 박탈 등이 있었다고 진술했다. 그러나 1심과 2심을 거쳐 대법원까지 이어진 재판에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두 사람에게는 무기징역이 확정됐다.

 

항소심부터 변호를 맡은 이는 당시 변호사였던 문재인이었다. 그는 훗날 이 사건을 변호사 생활 중 가장 한으로 남는 사건이라고 회고했다. 특히 장씨의 시력이 심각하게 나빴다는 점을 강조했다. 시력표의 가장 큰 글씨도 식별하기 어려운 상태였다는 설명이었다.

 

1990년대 초반은 DNA 감정이나 CCTV 분석이 보편화되기 전이었다. 자백이 핵심 증거로 활용되던 시기였고 강압수사 관행에 대한 비판도 뒤따랐다. 두 사람은 2013년 가석방됐고 이후 재심 전문으로 알려진 박준영 변호사의 도움을 받아 재심을 청구했다.

 

 

재심 과정에서 당시 수사 관계자들이 증인으로 신청됐지만 대부분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진술했다. 무기징역을 구형했던 검사는 끝내 출석하지 않았다. 2021년 1월 검찰은 두 사람에게 무죄를 구형했고 법원은 무죄를 선고했다. 다만 공무원 사칭 사건에 대해서는 선고를 유예했다.

 

사건의 유일한 목격자였던 A씨에 대해서는 다른 가능성도 제기됐다. 범행 직후 즉시 신고하지 않았다는 점과 진술의 일부가 상식과 어긋난다는 지적이 이어졌다. 시신 이동 흔적이 한 명의 범행을 시사한다는 분석도 나왔다.

 

그럼에도 재수사는 사실상 어려운 상황이다. 강도살인 혐의의 공소시효 15년이 이미 만료됐기 때문이다. 낙동강변 사건은 고문에 의한 허위 자백과 장기 수감이라는 사법 오판의 사례로 남았다. 동시에 진범은 끝내 규명되지 않은 채 역사 속 미제로 기록됐다.

이소망 기자 somang@sisalaw.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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