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 윤창호법 위헌 이후에도 ‘형벌 불소급’ 원칙 재확인

  • 등록 2025.12.26 12:32: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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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주운전 재범자를 가중처벌하기 위해 개정된 도로교통법을 법 시행 이전에 저지른 범죄에 적용한 것은 부당하다는 대법원 판단이 나왔다. 이른바 ‘윤창호법’ 위헌 결정 이후 개정된 법이라 하더라도 형벌은 행위 당시 법률에 따라야 한다는 죄형법정주의 원칙을 다시 한번 확인한 판결이다.

 

26일 법조계에 따르면 대법원 3부(주심 이흥구 대법관)는 도로교통법 위반(음주운전)과 사기 혐의로 기소돼 징역 1년을 선고받은 A씨의 원심 판결을 파기하고 사건을 인천지방법원으로 돌려보냈다.

 

A씨는 2023년 3월 5일 경기도의 한 도로에서 혈중알코올농도 0.183% 상태로 음주운전을 한 혐의와 같은 달 피해자로부터 6,800만 원을 편취한 혐의로 기소됐다. 검찰은 A씨가 2015년 5월 음주운전으로 벌금 100만 원의 형이 확정된 전력이 있다며, 10년 이내 재범에 해당한다는 이유로 개정 도로교통법상 가중처벌 조항을 적용해 기소했다.

 

쟁점은 A씨의 음주운전 범행 시점이었다. 개정된 도로교통법 제148조의2는 ‘음주운전으로 벌금형 이상이 확정된 날부터 10년 이내 다시 음주운전을 한 경우’를 가중처벌하도록 규정하고 있는데 해당 조항은 2023년 4월부터 시행됐다. A씨의 범행은 법 시행 한 달 전인 같은 해 3월에 이뤄졌다.

 

1심과 2심은 개정된 법률을 근거로 A씨의 음주운전 혐의를 유죄로 인정했다. 그러나 대법원의 판단은 달랐다.

 

대법원은 “개정 도로교통법이 시행되기 전에 이뤄진 범행에 이를 적용한 것은 죄형법정주의와 형벌 법규 불소급 원칙에 위배된다”며 원심을 파기했다. 형벌 법규는 법 시행 이후의 행위에만 적용할 수 있다는 헌법상 원칙을 벗어났다는 취지다.

 

‘윤창호법’은 과거 음주운전 재범을 일률적으로 가중처벌하면서도 이전 범행과의 시간적 간격에 제한을 두지 않았다. 이에 대해 헌법재판소는 “아무리 오래전 전력이라도 무조건 가중처벌하는 것은 책임과 형벌의 비례원칙에 반한다”며 위헌 결정을 내렸다.

 

이후 국회는 위헌 결정을 반영해 가중처벌 요건을 ‘벌금형 이상이 확정된 날부터 10년 이내’로 명확히 하는 방향으로 도로교통법을 개정했다. 문제의 조항은 완전히 새로운 범죄를 신설한 것이라기보다는, 위헌적 요소를 보완해 다시 정비한 규정에 가깝다.

 

다만 대법원은 이러한 입법 경위와 별개로 “형벌은 행위 당시의 법률에 따라야 한다”는 원칙에는 예외가 없다고 판단했다. 법률이 위헌 요소를 보완해 개정됐다고 하더라도, 시행 이전에 이뤄진 범죄에 소급 적용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대법원은 윤창호법 위헌 결정 이후에도 “위헌 결정이나 그 후속 입법이 있었다는 사정만으로 불리한 형벌 규정을 소급 적용할 수 없다”는 입장을 일관되게 유지해 왔다.

 

법조계에서는 이번 판결을 두고 음주운전 처벌을 완화한 결정이라기보다는, 형사법의 기본 원칙을 분명히 한 판단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법무법인 안팍 안지성 변호사는 “재범 가중처벌의 필요성과는 별개로 형벌 불소급 원칙은 형사법의 출발점”이라며 “입법 취지가 아무리 타당하더라도 시행 이전 범행에는 적용할 수 없다는 점을 명확히 한 판결”이라고 설명했다.

지승연 기자 news@tsisalaw.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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