잃어버린 시간 속에서 (서울동부구치소)

  • 등록 2026.01.09 19:0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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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 설계를 하며 건물의 도면을 그리던 시절 제 인생의 설계도 역시 완벽하다고 믿었습니다. 남들보다 이른 승진과 단란한 가정, 모든 것이 순조로운 직진로였으니까요.

 

하지만 예상치 못한 삶의 균열은 한순간에 찾아왔습니다. 가정의 붕괴와 이혼, 뒤이은 우울증은 제가 세워온 단단한 벽들을 모래성처럼 무너뜨렸습니다.

 

술로 현실을 피하려던 비겁함은 결국 돌이킬 수 없는 잘못으로 이어졌고, 정신을 차렸을 때 제 손에 쥐어진 것은 도면 대신 차가운 수갑이었습니다.

 

평생 사고 한번 치지 않고 살아온 저였기에 이곳 담장 안에서의 시간은 현실이 아닌 악몽처럼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부끄러움에 고개를 들 수 없었고 "이건 정말 나다운 모습이 아니다"라며 스스로를 부정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압니다. 도망치고 싶었던 이 범죄자의 모습 또한 제 선택이 낳은 제 삶의 지독한 일부라는 사실을요.

 

피해자분들께 드린 상처와 제가 탕진한 이 시간은 결코 허송세월이나 운 나쁜 사고가 아닙니다. 제 인생의 기초 공사가 어디서부터 잘못되었는지 뼈저리게 확인하는 가장 처절하고도 꼭 필요한 '재건축의 시간'이어야 함을 깨닫습니다.

 

"나답게 산다는 것"에 대해 매일 질문을 던집니다. 과거의 화려했던 이력에 매몰되는 것이 아니라 지금 저지른 과오를 정직하게 책임지고 다시는 타인에게 해를 끼치지 않는 사람으로 돌아가는 것. 그것만이 제가 찾을 수 있는 유일한 나다움일 것입니다.

 

잃어버린 세월을 후회하며 앉아있기보다, 남은 수감 기간을 속죄의 벽돌을 쌓는 시간으로 채우겠습니다. 긍정적인 마음이란 과거를 잊는 것이 아니라 과거를 거름 삼아 두 번 다시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는 단단한 사람이 되는 것이라 믿습니다.

 

사회로 돌아가는 날, 정직한 땀으로 제 삶을 다시 세우는 사람이 되어 있겠습니다.

채수범 기자 ctrueseal@tsisalaw.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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