접근금지 명령을 받은 남성이 이혼한 전 배우자를 성폭행한 뒤 살해하고 건물에 불까지 지른 사건이 발생하면서 제도의 실효성 문제가 다시 제기되고 있다.
14일 법조계에 따르면 A씨는 법원으로부터 피해자에 대한 접근금지 등 임시조치를 받은 상태였음에도 이를 위반하고 피해자 B씨가 근무하던 편의점을 찾아가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조사됐다.
법원은 성폭력 범죄와 살인, 방화 범죄가 결합된 중대한 사안으로 보고 각 범행의 경합을 인정해 징역 45년을 선고했다.
접근금지 명령은 가정폭력이나 스토킹 사건에서 피해자를 보호하기 위해 내려지는 조치다.
가정폭력 사건에서는 임시조치, 스토킹 사건에서는 잠정조치 형태로 이뤄지며 피해자나 주거지·직장 등 일정 범위 내 접근을 제한하는 내용이 포함된다. 이와 함께 퇴거·격리, 통신을 통한 접근 금지, 상담 위탁, 유치 등의 조치가 병행될 수 있다.
이러한 조치를 정당한 사유 없이 위반할 경우 형사처벌 대상이 된다. 다만 피해자의 동의가 있었다는 사정만으로 위반 책임이 면제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 법원의 입장이다.
스토킹 사건의 경우 긴급 상황에서는 경찰이 우선 접근금지 조치를 취할 수 있고, 법원이 잠정조치를 통해 전자장치 부착이나 유치 등의 처분을 결정할 수 있다.
실제로 잠정조치를 위반해 처벌된 사례도 적지 않다. 지난해 서울남부지방법원은 긴급응급조치와 잠정조치, 구치소 유치까지 이뤄졌음에도 유치 종료 직후 다시 피해자 주거지로 찾아가는 등 위반 행위가 반복된 사실이 인정돼 징역 10개월이 선고됐다.
이 사건은 접근금지 명령이 물리적 차단 장치가 아니라 위반 시 처벌을 전제로 한 제도라는 한계를 보여준 사례로 평가된다.
전문가들은 접근금지 명령만으로는 범행을 사전에 차단하기 어렵다는 점을 지적한다.
법률사무소 로유 배희정 변호사는 “접근금지 명령은 위반 시 처벌을 전제로 하는 제도일 뿐 가해자의 물리적 접근 자체를 사전에 차단하는 장치는 아니다"라면서 “실질적인 피해 예방을 위해서는 접근금지 위반 단계에서 보다 신속한 격리 조치나 전자장치 부착 등 강도 높은 대응이 병행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접근금지 명령 이후에도 보복 범죄가 이어지는 사례가 반복되면서 제도의 실효성을 높이기 위한 보완책 마련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번 사건 역시 보호조치가 내려진 상황에서 범행이 발생했다는 점에서 현장 대응 체계 전반에 대한 점검 필요성을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