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국이 별게 아니다! 일본에 뽕 팔믄 그게 바로 애국인기라”
2018년 개봉한 영화 ‘마약왕’(감독 우민호)의 주인공 이두삼(송강호 분)은 마약도 수출품이라며 애국을 말한다. 일본에 히로뽕을 팔아 망하게 만들겠다는 것이었다. 1970년대 마약 밀수업자인 이두삼은 일본에서 필로폰 원료를 수입해 부산에서 마약을 만들어 다시 일본에 수출하는 사업을 일으켜 거대한 부를 거머쥔다.
영화 ‘마약왕’은 대한민국 최대 마약왕이었던 한 실제 인물을 고증해 만들어졌다. 그 인물이 바로 이황순이다. 충북 청주 출신의 그는 고향을 떠나 부산에 정착해 살았다. 그가 지내던 곳은 부산 민락동에 위치한 ‘학산별장’.
고급 별장답게 정원엔 장미가 가득했고 잘 훈련된 맹견도 여러 마리 키웠다. 집 주변에 접근하는 외부인을 감지하는 고성능 음파탐지기가 집에 있을 정도로 호화로운 집이었다.
1960-70년대 부산은 일본과 한국을 오가는 밀수 사업이 호황을 누릴 때였다. 청주를 떠난 이황순은 부산의 폭력조직 ‘칠성파’에 가입하면서 본격적으로 부산에서의 활동을 시작했다. 당시 칠성파는 여느 지하조직과 마찬가지로 일본 대마도와 한국 부산을 오가는 밀수선을 잡아 밀수품 거래로 돈을 벌고 있었다.
이를 눈여겨 본 이황순은 아예 대형 무역선을 이용한 밀수에 나섰다. 밀수 일당을 조직적으로 움직이게 해 밀수품을 빼돌렸다.
그러나 1972년, 정부의 대대적인 밀수 소탕 작전에 이황순도 걸려들고 말았다. 같은 해 12월 금괴를 밀수한 혐의로 기소된 이황순은 징역 4년, 벌금 1400만원을 선고받고 마산교도소에 수감된다. 그리고 이듬해인 1973년 11월, 이황순은 폐결핵으로 형집행정지처분을 받아 풀려났다. 그리고 돌연 행방이 묘연해졌다. 주거제한지역 무단이탈로 그에게 곧 수배령이 떨어졌다.
이황순은 1980년 3월이 돼서야 다시 경찰에 체포됐다. 교도소에서 나온 지 6년 3개월 만의 일이다. 그 사이 그에겐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형집행정지로 풀려난 이황순은 마약 밀조 기술자를 만나 메스암페타민, 즉 히로뽕 제조법을 배운다. 한국보다 앞서 마약제조가 성행하던 일본이 정부 차원의 대대적인 마약 단속을 벌이자 위축된 제조업자들이 한국으로 넘어와 기술을 전수했고, 한국에서 만들어진 히로뽕을 다시 일본으로 밀반입해 갔던 것. 이 사업에 이황순이 깊숙이 관여하고 있었다.
이황순은 과거 했었던 밀수 경험에 히로뽕 제작 기술까지 더해지며 막대한 부를 축적했다. 그가 민락동의 호화별장에서 거주할 수 있었던 이유였다. 장미 정원 지하에 히로뽕 제작실을 마련해 둔 그는 맹견과 음파탐지기를 이용해 외부인의 접근을 철저히 차단한 채 은거하고 있었다.
그런 그를 다시 세상 밖으로 나오게 한 건 1979년 12월 한 밀수선이 인천항에서 적발되면서였다. 밀수선에서 녹용과 고급 시계 등과 함께 히로뽕의 핵심 원료인 에페드린이 발견됐다. 이를 발견한 검사는 이 원료를 필요로 하는 제조업자를 집요하게 추적해 마침내 그 이름과 거주지를 알아냈다. 학산별장의 주인 이황순이었다.
부산지검 특별수사반이 체포일로 결정한 날짜는 1980년 3월 19일, 수십 명의 경찰들이 학산별장을 둘러싸고 이황순과 대치를 벌였다. 이황순은 투항을 거부하고 갖고 있던 총을 쏘며 격렬히 저항하다 검거되었다. 검거 과정에서 자살 시도로 했으나 목숨은 건졌다.
이황순은 이 사건으로 15년형을 선고받고 다시 수감되었다. 그 이후 행적은 정확히 알려지지 않았다. 만기를 출소했다면 1995년 중반 출소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