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폭력 피해 ‘늦게 드러난 고통’…소멸시효 판단 기준은

  • 등록 2026.01.17 10: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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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D: 오늘은 성폭력 피해자 수진(가명)씨의 사연입니다. 수진씨는 15년 전 고등학교 3학년 때 현장실습을 나간 업체에서 부장에게 강간을 당했다고 하는데요. 당시 미성년자였던 수진씨는 불이익이 두려워 신고하지 못했고, 최근 가해자로부터 “잘 지내냐”는 연락을 받고 큰 충격을 받아 자살 시도까지 하게 됩니다. 결국 수진씨는 뒤늦게라도 법적 대응을 하기로 결심했는데요. 변호사님, 이 사건의 쟁점은 뭘까요?

박변: 이 사건은 크게 형사상 공소시효 문제, 민사상 손해배상 청구권의 소멸시효, 그리고 15년 전 성폭력 사실을 어떻게 입증할 수 있는지가 핵심 쟁점입니다.

 

 

PD: 먼저 형사처벌 가능성부터 따져봐야 할 것 같은데요. 강간죄 공소시효는 어떻게 되나요?

박변: 강간죄는 원칙적으로 공소시효가 10년입니다. 다만 미성년자에 대한 성폭력 범죄의 경우 성폭력처벌법에 따라 피해자가 성년에 달한 시점부터 공소시효가 진행됩니다. 또 DNA 같은 과학적 증거가 있는 경우에는 공소시효가 20년으로 연장될 수 있고, 13세 미만 아동이나 신체적·정신적 장애인을 대상으로 한 강간은 공소시효 자체가 적용되지 않습니다.

 

 

PD: 공소시효가 정지되는 경우도 있지 않나요?

박변: 있습니다. 공소가 제기되면 정지되고, 공범이 있는 경우에는 공범 중 1인에게 소송을 제기할 경우 다른 공범에게도 정지의 효력이 미칩니다. 또 가해자가 형사처벌을 피할 목적으로 해외에 체류한 기간에도 공소시효는 정지됩니다. 다만 수진씨 사건의 경우 성인이 된 이후 이미 15년이 지났고, DNA 같은 과학적 증거도 없는 상황이라 형사상 공소시효는 완성됐다고 보는 게 현실적입니다.

 

 

PD: 그렇다면 민사상 손해배상은 어떻습니까? 소멸시효도 이미 끝난 건가요?

박변: 민법 제766조에 따르면 불법행위로 인한 손해배상 청구권은 원칙적으로 행위가 있은 날로부터 10년이 지나면 소멸합니다. 하지만 대법원은 성폭력 사건처럼 손해가 나중에 현실화되는 경우, 그 손해가 객관적이고 구체적으로 발생한 시점을 소멸시효의 기산점으로 보고 있습니다. 특히 외상후스트레스장애나 우울장애 진단 시점을 중요하게 봅니다.

 

 

PD: 수진씨 사건에서는 어떻게 볼 수 있을까요?

박변: 수진씨는 가해자의 최근 연락을 계기로 과거 기억이 되살아나 정신적 상태가 급격히 악화됐고, 자살 시도를 하기까지 했습니다. 이 경우 이전에는 억눌려 있던 손해가 최근에 새롭게 현실화된 것으로 볼 여지가 큽니다. 따라서 이 사건에서는 민사상 손해배상 청구권의 소멸시효가 완성되지 않았다고 주장해 볼 수 있습니다.

 

 

PD: 하지만 15년 전 강간 사실을 입증하는 게 가장 어렵지 않을까요?

박변: 맞습니다. 다만 민사소송은 형사재판처럼 의심의 여지 없는 증명을 요하는 것이 아니라 ‘고도의 개연성’을 입증하면 됩니다. 당시 피해 사실을 정리한 진술, 함께 실습했던 동료의 증언, 자살 시도를 알고 있는 주변인 증언, 사건 전후 생활태도 변화, 일기나 메모, 정신과 치료 기록, 법정에서의 본인신문 등을 종합해 불법행위를 입증해야 합니다. 형사처벌은 어렵더라도 민사소송을 통해 법적 판단을 받는 길은 열려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박보영 변호사 sungheonlaw@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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