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적·정신장애가 있는 이웃의 절도 현장에서 비닐봉지를 건넸다는 이유로 특수절도 혐의로 기소된 여성이 1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았음에도 검찰이 항소하면서 사건의 법적 책임 범위를 둘러싼 논란이 이어지고 있다.
21일 법조계에 따르면 제주지방법원 제1형사부(오창훈 부장판사)는 특수절도 혐의로 기소된 A씨 사건의 항소심 첫 공판을 열고 사건 경위와 쟁점을 살펴보기 위한 심리에 들어갔다.
검찰은 A씨가 같은 아파트에 거주하던 B씨의 절도 과정에서 주변을 살피고 비닐봉지를 건네 범행을 도왔다며 공범 책임을 물어 기소했다.
사건은 지난해 6월 27일 제주시 한 의류매장 외부 진열대에서 발생했다. B씨는 매장 앞에 진열돼 있던 옷 6벌, 시가 약 3만원 상당을 가져간 것으로 조사됐다.
검찰은 당시 현장에 함께 있던 A씨가 주변 상황을 살피는 역할을 하며 자신이 들고 있던 검은색 비닐봉지를 건네 범행을 도왔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1심 재판부는 검찰의 공소사실을 인정하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CCTV 영상과 관련 진술 등을 종합한 결과 A씨가 절도 범행을 인식하거나 사전에 공모했다고 보기 어렵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A씨 역시 수사 단계부터 범행 가담 의도를 부인해 왔다. A씨는 “비닐봉지 안에는 B씨의 약이 들어있었고, 약봉지를 달라고 해서 건네준 것일 뿐 절도 사실은 전혀 알지 못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 사건의 핵심 쟁점은 A씨의 행위가 절도 범행의 공범으로 평가될 수 있는지 여부다. 형법 제329조는 타인의 재물을 절취한 경우 절도죄가 성립한다고 규정한다. 또 형법 제331조는 두 명 이상이 합동해 절도를 저지른 경우 특수절도죄로 가중 처벌하도록 정하고 있다.
법원은 공범 책임을 인정하기 위해 단순히 현장에 함께 있었다는 사정만으로는 부족하다는 입장을 유지해 왔다. 범행에 대한 인식과 실행 행위의 분담이 인정돼야 공동정범이 성립한다는 것이다.
관련 판례에서도 공범 성립 요건은 엄격하게 해석된다. 실제로 2013년 서울고등법원은 “공동정범이 인정되려면 단순한 동조나 묵인이 아니라 공동가공의 의사와 기능적 행위지배가 있어야 한다”며 “범행을 용이하게 하는 행위를 했더라도 범행을 인식한 상태에서 이를 도울 의사가 있어야 방조범이 성립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일부 하급심 판결에서도 절도 현장에서 단순히 물건을 건네거나 운반을 도운 정도만으로는 특수절도의 공동정범을 인정하기 어렵다고 본 사례가 있다.
법원은 범행 인식 여부와 역할 분담의 정도를 구체적으로 살펴 공범 책임을 판단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이번 사건에서도 A씨가 비닐봉지를 전달한 행위가 단순한 전달인지 절도 실행을 돕는 역할 분담에 해당하는지 여부가 핵심 판단 요소가 될 전망이다. 특히 A씨가 당시 절도 상황을 인식했는지 봉지 전달이 절취 행위를 실제로 용이하게 했는지 등이 항소심의 주요 쟁점이 될 것으로 보인다.
검찰이 항소심에서 공소장 변경을 시도할 가능성도 제기된다. 형사소송법 제298조는 공소사실의 동일성을 해하지 않는 범위에서 법원의 허가를 받아 공소사실이나 적용 법조를 변경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항소심에서도 기본적 사실관계가 동일한 범위라면 공소장 변경이 허용된다는 것이 대법원 판례의 입장이다.
또 대법원 역시 공동정범 성립 요건에 대해 엄격한 기준을 제시하고 있다. 대법원은 “공동정범이 성립하려면 단순히 현장에 함께 있었다는 사정만으로는 부족하고 범행을 함께 실행하려는 공동가공의 의사와 기능적 행위지배가 인정돼야 한다”고 판시했다(대법원 선고 2004도4437).
한편 공동피고인이었던 B씨는 검찰 기소 이후 사망해 법원은 해당 부분에 대해 공소기각 결정을 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