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이후 경기 침체와 고금리 여파 속에서도 연체 채무를 모두 상환한 약 293만 명이 신용 불이익에서 벗어나 정상적인 금융생활로 복귀하게 됐다. 금융권이 소액 연체를 성실히 갚은 차주에 대해 연체 이력 공유를 제한하는 신용회복 지원 조치를 시행하면서다.
22일 금융위원회에 따르면 2020년 1월부터 2023년 8월 사이 5000만원 이하 채무를 연체했다가 2023년 12월 31일까지 전액 상환한 개인과 개인사업자 약 292만 8000명에 대해 연체 이력 정보의 공유·활용 제한 조치가 완료됐다. 대상자는 개인 257만 2000명, 개인사업자 35만 6000명이다.
그동안 채무자가 연체금을 모두 상환하더라도 금융권에서는 해당 연체 기록이 최장 5년 동안 신용정보로 남아 금융거래에 영향을 주는 구조였다. 이 때문에 상환 이후에도 대출 제한이나 카드 발급 거절 등 금융 활동에 제약을 겪는 사례가 적지 않았다.
이 같은 구조는 신용정보의 이용 및 보호에 관한 법률 체계에서 비롯된다. 신용정보법과 시행령은 연체나 부도 등 개인의 신용도에 영향을 미치는 정보에 대해 ‘사유 해소일로부터 최장 5년 이내’ 관리 후 삭제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즉 연체가 해소되더라도 일정 기간 동안 금융기관이 해당 정보를 활용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시행령 역시 연체·부도·대위변제 등 신용도를 판단하는 정보의 보존 및 활용 기간을 3년 이상 5년 이내 범위에서 금융위원회가 정하도록 하고 있으며, 필요할 경우 그 기간을 단축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이번 신용회복 지원 조치는 이러한 법적 구조 자체를 변경한 것은 아니다. 대신 금융협회와 금융회사, 신용정보원 등이 참여한 금융권 공동협약 방식으로 시행됐다. 일정 기간 발생한 소액 연체를 기한 내 전액 상환한 경우 금융회사 간 연체정보 공유를 제한하고 신용평가에도 반영하지 않는 방식이다.
조치 이후 신용점수 개선 효과도 확인됐다. 개인의 평균 신용점수는 615점에서 644점으로 29점 상승했고, 개인사업자는 625점에서 670점으로 45점 올랐다. 연령대별로는 전반적인 상승세가 나타난 가운데 20대 이하의 평균 상승 폭이 37점으로 가장 컸다.
개인사업자의 경우 숙박·음식점업과 도·소매업 등 민생 밀접 업종에서 금융 접근성 개선 효과가 나타났다. 개인 약 3만 8000명이 새롭게 신용카드를 발급받았고, 약 11만 명은 은행권 신규 대출을 이용했다.
개인사업자 가운데에서도 약 6000명이 은행 대출을 새로 이용했으며, 일부 차주는 대출 한도 확대나 금리 인하 등 금융 조건 개선 효과를 경험했다.
또 지난해 8월 금융권이 신용회복 지원 협약을 체결한 이후에도 채무 상환이 이어지면서 개인 12만 3000명과 개인사업자 22만 8000명이 추가로 연체 채무를 변제한 것으로 집계됐다.
다만 이러한 조치는 신용정보법의 기본 원칙인 ‘신용정보의 정확성과 최신성 유지’와 긴장 관계에 놓일 수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실제로 발생한 연체 사실을 금융기관 간 공유하지 않는 방식이 법 취지와 충돌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금융당국은 제도 시행 과정에서 금융회사들이 법 위반으로 제재를 받지 않도록 비조치 의견서를 통해 행정상 면책을 부여하는 방식으로 정책을 운영하고 있다.
연체 정보 관리 문제는 과거에도 법적 분쟁으로 이어진 사례가 있다. 2008년 수원지방법원은 금융기관이 연체 금액을 실제보다 잘못 입력해 금융권에 공유되도록 한 사건에서 고객의 신용카드 이용 정지와 한도 축소 등 피해가 발생했다며 금융기관의 손해배상 책임을 인정했다.
법원은 잘못된 연체정보 등록으로 개인의 신용이 훼손되고 경제활동에 제약이 발생했다면 정신적 손해에 대한 배상 책임이 인정될 수 있다고 판단했다.
대법원도 신용회복 지원 대상자에게 연체 정보가 잘못 등록된 뒤 장기간 삭제되지 않은 사건에서 금융기관의 관리 책임 여부를 다시 심리하도록 사건을 파기환송한 바 있다(대법원 선고 2011다31546).
전문가들은 이번 조치가 신용 회복 속도를 높이는 정책적 효과가 있지만 제도 운영 과정에서 법적 쟁점이 남아 있다고 보고 있다.
특히 연체 발생 시점과 상환 방식, 보증인의 변제 여부, 분할 상환이나 대환 대출 등이 ‘전액 상환’ 요건에 포함되는지 여부는 실무에서 해석 문제가 될 가능성이 있다는 분석이다.
또 시스템 오류로 연체 정보가 계속 공유되거나 삭제가 지연되는 경우 기존 판례 흐름에 비춰 금융회사에 손해배상 책임이 발생할 가능성도 제기된다.
한편 금융위원회는 중·저신용자의 금융 접근성을 높이기 위한 정책을 계속 확대할 계획이다. 정책서민금융을 통해 신용을 축적한 뒤 제도권 금융으로 이동하도록 지원하는 ‘크레딧 빌드업(Credit Build-up)’ 프로그램을 추진하고, 대안정보 활용을 확대해 금융 이력이 부족한 계층의 신용 형성을 지원한다는 방침이다.
금융권 관계자는 “이번 조치는 성실 상환자의 경제 활동을 정상화하기 위한 정책적 지원 성격이 강하다”며 “신용정보 관리 체계와의 정합성을 유지하면서 제도를 운영하는 것이 향후 과제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