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정에서 고압적인 태도나 모욕적인 발언으로 재판 당사자와 변호인의 방어권을 침해했다는 평가를 받은 판사들이 여전히 존재한다는 조사 결과가 나왔다.
서울지방변호사회는 27일 ‘2025년도 법관평가’ 결과를 발표하고 재판 진행 과정에서 부적절한 언행이나 강압적인 태도를 보였다는 평가 사례를 공개했다.
이번 평가는 서울변회 소속 변호사 2449명이 지난해 수행한 사건을 기준으로 담당 재판부 법관을 평가하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5명 이상의 변호사로부터 평가를 받은 법관은 총 1341명이었으며, 평균 점수는 84.188점으로 전년도보다 소폭 상승했다.
서울변회는 이 가운데 10명 이상에게 평가를 받은 법관 중 점수가 낮은 20명을 ‘하위 평가 법관’으로 분류했다. 다만 해당 법관의 실명은 공개하지 않고 소속 법원과 평가 사례만 소개했다.
서울동부지방법원 소속 A판사는 최근 6년 동안 다섯 차례 하위 평가 대상에 포함된 것으로 나타났다. 변호사들은 A판사가 재판 과정에서 소송대리인에게 강압적인 발언을 하거나 증인신문을 제한하는 등 거친 방식으로 재판을 진행했다는 평가를 남겼다.
평가 사례에 따르면 A판사는 재판 중 호통을 치거나 비꼬는 표현을 사용하는 등 모욕적인 태도를 보였다는 지적을 받았다.
2023년과 2024년 법관평가에서도 소송대리인을 향해 “욕 나오게 하지 말아라”, “예전 같으면 공권력에 순응하지 않으면 곤장을 칠 일인데 이제는 곤장을 칠 수 없으니 참…”이라는 발언을 했다는 사례가 문제 사례로 제시됐다.
또 재판 과정에서 발언 시간을 제한한다며 “50초, 30초, 20초, 10초”를 외치거나 “질문하지 말라”며 변호인의 질문을 막았다는 평가도 포함됐다.
변호사의 표정을 문제 삼으며 몇 분 동안 재판을 중단한 뒤 계속 노려봤다는 사례와 첫 형사 재판에서 피고인에게 “반성하라”고 말한 뒤 자백한 피고인을 곧바로 구속했다는 사례도 소개됐다.
일부 평가에서는 재판 중 판사가 고성을 지르거나 볼펜을 던졌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변호인을 선임하지 못한 피고인이 법정에 출석하자 욕설을 하며 법정 분위기를 험악하게 만들었다는 사례도 있었다.
반면 공정한 재판 진행과 충실한 심리로 높은 평가를 받은 법관들도 있었다. 서울변회는 논리적인 판단과 충분한 입증 기회 보장, 재판 당사자에 대한 경청과 배려 등을 이유로 72명의 법관을 ‘우수 법관’으로 선정했다.
서울변회는 이번 평가 결과를 법원행정처와 각 법원장에게 전달하고 해당 법관에게도 개별 통보할 계획이다.
변호사단체의 법관평가는 2008년 서울변회가 처음 도입했다. 이후 제도가 확대돼 2016년부터는 전국 14개 지방변호사회가 일제히 법관평가를 실시하고 있다. 대한변호사협회는 각 지방변호사회의 평가 결과를 취합해 법원행정처에 전달하고 있으며, 법관 인사자료로 활용될 수 있도록 요청하고 있다.
다만 변호사단체의 법관평가는 법률로 설치된 공식 제도라기보다 변호사단체가 자체적으로 실시하는 평가라는 점에서 법적 성격을 둘러싼 논의도 이어지고 있다.
법원조직법 제25조의 2항에 따르면 법관 인사와 관련된 사항을 심의하는 법관인사위원회에 대한변호사협회장이 추천한 변호사 2명이 참여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또 법관인사규칙에 따르면 대법원장은 판사 임용 과정에서 지방변호사회장이나 대한변협회장에게 의견이나 참고자료 제출을 요청할 수 있다.
이 때문에 변호사단체의 평가 결과가 법관 인사 과정에서 참고 자료로 활용될 가능성이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다만 현행 법령상 법관평가 결과가 인사나 징계에 직접 반영된다는 규정은 없다.
실제로 법관의 연임 여부나 인사 판단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평가는 법원 내부의 근무성적 평정제도를 통해 이뤄진다. 이 제도는 1994년 법원조직법 개정을 통해 도입돼 1995년부터 시행됐다. 판사의 사건 처리율과 상소율, 파기율 등 재판 수행 능력과 자질을 종합적으로 평가하는 방식으로 운영된다.
이러한 근무평정 결과는 법관 인사나 연임 심사 과정에서 실제로 반영된다. 서울행정법원은 한 판사가 근무평정 결과 등을 이유로 연임 대상에서 제외된 처분에 대해 제기한 소송에서 “근무성적이 현저히 불량한 경우 연임을 하지 않을 수 있다”며 처분이 적법하다고 판단했다(서울행정법원 선고 2012구합28773).
법원은 해당 판결에서 법관에 대한 근무평정 제도가 사법부의 효율성과 신뢰 확보를 위해 필요한 제도라고 설명했다. 법관의 업무 수행 능력과 자질을 장기간 누적 평가해 인사에 반영하는 것은 사법 기능의 정상적 운영을 위한 조치라는 취지다.
법조계에서는 변호사단체의 법관평가가 직접적인 법적 효력을 갖지는 않지만 재판 과정에서 문제 사례를 외부에서 기록하고 공개하는 역할을 한다는 점에서 일정한 의미가 있다는 평가도 나온다.
변호사들이 실제 재판 경험을 바탕으로 평가를 진행한다는 점에서 재판 절차와 태도에 대한 현장의 의견을 전달하는 기능을 한다는 것이다.
다만 법관평가가 재판 독립을 침해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판사의 재판 진행 방식이나 판결 결과가 평가 대상이 될 경우 외부 평가가 재판에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있다는 지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