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 “헌법 질서 흔드는 재판소원제, 국민 동의 선행돼야”

  • 등록 2026.02.19 11:3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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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헌 수준 제도 변화에 공론화 부재 지적
“4심제 희망고문과 소송 장기화 피해 우려”

 

법원 재판에 대해 헌법소원을 허용하는 이른바 ‘재판소원’ 도입을 둘러싸고 사법부 내부의 충돌이 격화되고 있다. 대법원은 재판소원이 현행 헌법 체계에 어긋나며 사법제도의 근간을 바꾸는 사안인 만큼 충분한 국민적 논의와 동의 없이 추진돼서는 안 된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19일 법조계에 따르면 대법원은 전날 ‘재판소원에 관한 Q&A 참고자료’를 배포하고 재판소원 도입 논의와 관련한 공식 견해를 밝혔다.

 

이는 앞서 헌법재판소가 관련 참고자료를 통해 입장을 정리한 데 대한 사실상의 반박 성격이다. 해당 자료에는 법안 심사 과정에서 제기된 쟁점들을 중심으로 대법원의 논리를 설명했다.

 

대법원은 재판소원이 헌법상 허용되지 않는다고 전제했다. 현행 헌법은 헌법해석 권한을 법원과 헌법재판소에 분산해 부여하고 있으며, 어느 기관의 재판을 다른 기관이 다시 심사하는 구조를 예정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특히 헌법은 구체적 사건에서 법을 해석하고 분쟁을 해결하는 사법권을 법원에 부여하고, 헌법재판소는 위헌법률심판과 탄핵심판 등 열거된 권한만 행사하도록 설계돼 있다고 강조했다.

 

대법원은 헌법재판소가 재판소원의 근거로 제시한 독일 사례에 대해서도 “우리 헌법과 전혀 다르다”고 지적했다.

 

독일은 연방헌법재판소가 사법부에 속하는 최고 사법기관의 성격을 갖는 반면, 우리 헌법은 법원과 헌법재판소를 독립된 헌법기관으로 분리하고 있다는 것이다. 헌법재판관 역시 법관이 아니라는 점도 덧붙였다.

 

헌법해석 권한을 분산한 취지 역시 기본권 보호에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헌법 문언이 추상적이고 광범위한 해석을 가능하게 하는 만큼 권한 집중보다는 합리적 분산이 국민의 기본권 보호에 유리하다는 판단이다.

 

대법원은 헌법재판소가 정치적 사건을 담당하는 성격의 기관인 반면 법원은 개별 권리구제를 본질로 하는 기관이라며 헌법재판소가 입법권과 행정권을 통제하므로 사법권도 통제해야 한다는 논리는 성립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대법원은 재판소원 도입 시 국민이 사실상 ‘4심제’에 놓이게 될 가능성도 문제 삼았다. 재판소원 사유가 추상적인 기본권 침해로 설정돼 있어 패소 당사자 대부분이 재판소원을 제기할 수 있고 이 과정에서 소송이 반복되며 장기화될 우려가 크다는 것이다.

 

헌법심이라는 명칭과 달리 헌법재판소가 대법원 판결을 취소하는 구조인 만큼 실질적으로 상고심 위에 또 하나의 재판 단계가 추가된다는 지적이다.

 

헌법재판소의 사건 처리 능력에 대한 우려도 제기했다. 현재 헌법재판소는 9명의 재판관과 70여 명의 연구관으로 연간 약 2500건의 사건을 처리하고 있으며 평균 처리 기간도 2년을 넘는다. 대법원은 대법원 판결에 한해 재판소원을 허용하더라도 연간 1만5000건 이상의 사건이 추가로 접수될 가능성이 있다며 헌법재판 지연이 불가피하다고 분석했다.

 

대법원은 재판소원이 개헌 사항에 준하는 중대한 제도 변화임에도 국민 논의 과정이 사실상 배제돼 있다고 지적했다. 헌법의 기본 이념과 설계를 법률 개정만으로 변경할 수 없으며 근본적 제도 개편을 위해서는 헌법개정권력의 주체인 국민 다수의 동의와 공감대가 전제돼야 한다는 입장이다.

 

아울러 충분한 논의 없이 헌법재판소의 문제 제기를 계기로 법안이 급속히 추진된 점을 문제 삼았다. 그러면서 국회와 법원, 헌법재판소를 포함해 전문가들이 참여하는 공론화 기구를 통해 숙의 과정을 거쳐야 국민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박보라 기자 booora@tsisalaw.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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